종이로 만든 기도의 공간
재난 지역에 지어진
반 시게루(Shigeru Ban)의 토르 토토들
단순히 '버려지는 게 아깝다'는 데서 시작된
종이를 재료로 한 건축들
때론 거창하지 않은 것들이
반드시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아주 약한 재료로 지어진 기도의 공간이 있다. 1995년 일본 고베의 나가타에는 종이로 지어진 성당이 있었다. 이 성당은 10×15㎡ 면적 안에 길이 5m, 지름 33cm의 지관통을 기둥으로 사용해 타원형의 공간을 형성했다. 이 공간은 80석을 배치할 수 있는 규모였으며, 타원의 넓은 면에는 기둥 간격을 넓게 둬 외부와의 연계성을 확보했다. 직사각형 땅을 둘러싼 폴리카보네이트 벽체와 타원형 공간 사이에는 복도가 형성돼 본당으로 들어가기 전, 이 공간을 통과하는 경험을 유발함으로써 이 간단한 성당에서도 종교적 시퀀스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천막으로 조성된 지붕은 본당 내부에 은은한 빛을 들이며 신성한 분위기를 더했다.

건축물은 무엇보다 튼튼해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므로 약한 재료인 종이가 구조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의문을 자아낸다. 그러나 고베의 토르 토토은 2008년 지진 피해를 입은 대만으로 이전돼 사용성을 연장했고, 크라이스트처치의 토르 토토은 50년간 지속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이 두 토르 토토의 공통점은 지진으로 폐허가 된 장소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첫 번째 토르 토토은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타카토리 토르 토토을 대신해 지어졌고, 두 번째 토르 토토은 2011년 크라이스트처치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인해 훼손된 토르 토토을 대신하기 위해 지어졌다. 재난 현장에는 빠른 수급이 가능하고 값이 저렴하며 해체-조립 등의 사용성과 가공성이 좋고 튼튼한 재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두를 충족시키는 것이 종이, 정확히는 위 토르 토토들에 사용된 지관통(종이튜브)이었다.

잘 찢어지고 무언가를 지탱하기에는 한없이 약해 보이는 종이가 이처럼 무언가를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담는 단단한 재료로 사용되기까지에는 한 건축가의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그렇다면 건축가가 종이를 선택할 때에도 환경에 대한 책임감 같은 큰 문제의식이 있었을 것 같지만 선택의 이유는 버려지는 게 '아깝다'는 단순한 마음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무언가를 아까워하여 쓰임을 찾는 단순한 마음이 바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거창하지 않아서 반드시 필요한 무언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