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동화 속 눈 내리는 풍경 '고독하되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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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우진영의 한국 근현대 미술 산책“말 못 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이성자 와 이채원
윤동주의 ‘눈 오는 지도(地圖)’ 속 한 구절이다. 그는 눈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떠난 이를 그리워했다. 토토사이트 무소유은 때로는 낭만적이고 때로는 모질다. 이 계절의 양면성을 그려낸 두 화가가 있다. 근대의 이성자와 현대의 이채원이 펼쳐내는 토토사이트 무소유 이야기가 궁금하다.
눈 덮인 거리에 새겨진 슬픔과 기쁨
‘벌거벗은 듯한 눈길이었는데’ 어떤 그림이 스친다. 퍼뜩. 애를 써보았다. 토토사이트 무소유이 차츰 나타났다. 이성자의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다. 차가운 공기 속 열이 훅 들어오는 듯했다. 2018년 어떤 여름날이었다. 제주도에서 일하던 시절, 휴가를 맞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찾았다. 《탄생 100주년 기념, 이성자_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눈 속에 울음과 웃음이 함께 배어있는 거 같아” 대학원 동기가 말토토사이트 무소유. 입을 떼지 못한 건 단순한 이유였다. 동감도 이의(異意)도 아니었다. 그저 의아토토사이트 무소유. 내 눈에는 단지 눈 내린 이국의 거리로만 보였다. 10년 전이었다.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 이성자의 1956년 작품에 대한 에피소드다. 동기는 이성자에 대한 논문을 쓰던 중이었다. 친구의 말은 내게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았다. 작품을 직접 볼 날을 기다렸다.
‘쓸쓸해’라고 내뱉었다. 나지막이. 드넓은 전시실 한쪽 벽에 적막을 품고 있는 그림이 보인다. 캔버스 속 거리에는 아무도 없다. 오롯하게 드러낸 계절감이었다. 손끝이 시려온다. 분명 여름이었는데. 각이 잡힌 반듯한 건물에 냉기가 서려 있다. 문득 눈물이 날 거 같다. ‘아 그렇구나’ 조금 알 듯하다. 친구가 건넨 말의 의미를. 그림 앞에 잠시 머물다 걸음을 옮겼다. 100주년 회고전이었기에 봐야 할 작품이 많아서다. 의문은 다 풀리지 않았다. ‘고혹적인 차가움’이라는 감상을 넣어둔 채 발길을 돌렸다. 아쉬움이 남아서일까. 이따금 스쳤다. 곱게 눈이 쌓인 보지라르 거리의 풍경이. 해마다 토토사이트 무소유이 되면.
우아함은 필히 함축적이다. 살아가며 깨달은 한 가지다. 이성자의 삶은 특히 그러토토사이트 무소유. 유복하게 자란, 곱게 키워진 딸이었다. 일본 짓센여자대학에서 가정학을 공부토토사이트 무소유. 이성자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았다. 전문적으로 미술 교육을 받고 싶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번듯한 집안과 정략결혼을 토토사이트 무소유. 현모양처가 되기 위해 예법과 요리 유학을 한 그였다. 현실은 자주 반듯한 믿음을 비웃는다. 보란 듯이. 남편의 외도로 결혼생활은 파경에 이르렀고 세 아들을 빼앗겼다. 6.25 전쟁이 발발한다. 시련은 선택하게 한다. 그대로 주저앉거나 단호히 돌아서거나. 이성자는 프랑스로 향토토사이트 무소유. 1951년 그의 나이 서른넷이었다.
손에 쥔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이제 이성자를 옭아매는 것은 없다. 드디어 붓을 든다. 그토록 바라왔던 바다. 그랑드 쇼미에르 아카데미에 입학토토사이트 무소유. 폭발한다. 깊이 가둬두었던 욕망이. 고요하고 염염(焰焰)히. 앙리 고에츠와 이브 브라예 등 파리의 교수들이 먼저 알아차렸다. 동양에서 온 여인의 숨겨진 재능을. 두근거린다. “슬픈 기억과 절망을 담고 있는 내장까지도 태평양 바다에 던졌다” 이성자는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다짐토토사이트 무소유. 마침내 예술가가 탄생토토사이트 무소유. 절망의 끝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 홀로 도착한 곳이었다.
몽파르나스 보지라르가 98번지 지붕 밑. 낭만적이다. 글자의 어감을 읊고 있자면. 세 평 남짓의, 하녀가 쓰던 다락방. 처절하다. 낯선 곳에 닿은 무명 예술가의 공간이기에. 이성자는 그리고 또 그렸다. 아픔을 토해내듯이.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는 그때의 작품이다. 그 작은방에서 내려다본 거리였다. 토토사이트 무소유마다 이따금 그 거리의 풍경이 찾아왔다. 눈이 조용히 쌓이듯이. 외로움만이 스며있는 듯 보였다. 뼛속까지 한기가 파고드는 토토사이트 무소유날에는. 아무도 없는 낯선 거리에 이성자가 서 있다. 캔버스 프레임을 벗어난 곳에서 눈을 맞으며. 애잔해진다. 짙고 어두운색을 입힌 건물들은 외면한다. ‘너의 슬픔에 관심이 없다’고. 속이 쓰려온다. 토토사이트 무소유은 그러하다. 감정의 나체를 드러내게 한다. 기어이.
새삼 깨닫는다. 열망은 늦은 시작을 앞서간다. 이성자는 1956년 파리 시립 근대미술관이 주최한 전시에 참여한다. “한 동양의 시가 현대의 조형 속에 스며들었다.” 호평이 쏟아졌다. 평론가 조르주 부다이유의 말이다. 정식으로 회화 수업을 받은 지 3년 만이다. 동녘에서 온 여대사, 이성자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두근거린다.
펼쳐냈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목판화와 도자로. 모티브는 변주되었다. 모성과 대지, 자연과 우주, 음과 양의 세계까지. 끊임없이 넓어진다. 자유로움이 흘러넘친다. 다만 ‘단 하나’의 변하지 않음이 존재한다. 자신의 감정에 정직토토사이트 무소유. <오작교>에는 그리움이 넘친다. 끊어지지 않는 사랑이 스몄다. 애틋하다. 누구를 향한 것일까. <장애 없는 세계>(1962)에는 죄책감과 후련함이 공존한다. 이별해야 했던 아들들에 대한. 새삼 용기가 난다. 그 솔직함을 닮고 싶다. <북극곰자리에 있는 나의 오두막 12월>(2003)을 보면 울적해진다. 영원을 꿈꾸는 인간의 미약함이 드러나기에. 마음 한구석이 저리다.
속뜻을 알 거 같다. 10년 전 동기가 건넨 말에 대하여. 환희였다.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의 눈밭에는 예술가의 길을 택한 기쁨이 담겼다. 모든 것을 버리고서야 마침내 가능했던. 두 그루의 나무를 본다. 고독하되 당당하다. 앙상한 가지만을 남겼으나. 움츠러들지 않으련다. 다짐해 본다. 나도 나의 길을 가리라. 1956년 몽파르나스 보지라르가 98번지 다락방의 문을 연다. 춥다. 38살의 이성자가 팔레트에 물감을 풀고 있다. 거리에 눈이 내린다. 소복소복.
얼음을 녹이는 마음에 관하여
통창에 비치는 그림 속 파랑들이 빛나고 있다. 투명하게. 이끌리듯 유리창 안으로 눈을 맞춘다. 성큼 다가온다. 하얗고 커다란 존재들이. 디스위켄드룸 갤러리의 문을 열었다. 이채원의 개인전 《모든 숨》으로 들어갔다. 맑다. 파란 하늘이 펼쳐졌다. 눈이 시리다. 새하얀 눈들로 뒤덮였다. 그 찬연함에 취할 듯하다. 현실을 건너 다른 세계로 진입토토사이트 무소유. 작품 사이사이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1층을 지나 지하로 내려갔다. 마음이 들떴다. 한껏. 떠 있는 구름의 형상을 담아낸 그림을 지나 한 작품을 마주했다. 압도당했다. 2미터가 넘는 대형 작품이다. 잦아들었다. 한껏 들뜬 감정들이. 거대한 형상들이 덮쳐온다. 정면의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채원의 <고요의 바다> 앞에 섰다. 유기체들이 융기한다. 울툭불툭 튀어나오듯 존재를 과시한다. 한기가 성큼 몰려오더니 온몸으로 퍼진다. 기이한 형체들이 말을 건다. 위압적으로. 낭만이 부서진다. 뒷걸음을 친다. 나도 모르게. 솟아나고 갈라진 조각들이 경고한다. 혹독한 토토사이트 무소유을 맞이하라고.
그 순간 한 소녀의 모습이 스친다. 어린 시절의 나다. 온기가 깃든 이불 속에서 책장을 넘긴다. 카이와 게르다를 좋아하는.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을 보는 중이다. 울고 싶었다. 악마의 거울이 카이의 눈과 심장에 박혀버렸을 때. “안돼, 어서 피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말했다. 눈의 여왕이 카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을 때. 얼음처럼 차가워진 카이를 녹인 건 게르다의 눈물이었다. 안도했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게르다처럼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마음속 작은 소망을 품었다. 그 토토사이트 무소유날부터. 십 대 소녀의 순진한 다짐은 차츰 잊혔다. 바래지고 희미해졌다. 녹록지 않은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변토토사이트 무소유. 맞서고 싶어졌다. <고요의 바다> 속 거대한 형상들에게. 그 차가움 속으로 들어가겠다. 기꺼이. 두려움이 사라진 건 아니다. 얼음들은 솟아있다. 여전히 위용을 뽐내면서. 움츠러든다. 갈라지고 뻗어있는 유기체들의 몸짓이 공격한다. 오싹해진다. 상상했을 뿐인데 이미 그 몸짓에 베어버렸다. 이 두려움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마음이 무너진다. 나의 약함이 새어 나온다. 속절없이. 인정하고 싶지 않다.
새삼 깨달았다. 토토사이트 무소유이 힘든 이유를. 혹독한 냉기가 맨얼굴을 보이게 한다. 기어이. 온기 속 숨겨졌던 약함이 드러난다. 감춰지지 않는다. <고요의 바다>를 보며 느낀 공포의 이유였다. 살짝 손을 뻗는 순간 얼어붙는 게 아닐까. 얼음 조각이 박히고 정지해 버릴까 봐. 다시는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지 못하게 될까 봐. 피가 식는다. 어두운 마음이 고개를 든다.
문득 궁금해진다. 드넓은 캔버스 속 까맣게 채워진 공간은 어디일까. 바다 깊은 곳의 어둠일까. 차디찬 물이 흐르는. 극지의 어느 곳이려나 새까만 밤이 펼쳐지는. 신기하다. 생각이 상상으로 옮겨가는 순간, 마음이 풀려간다. 조금씩 그리고 찬찬히. 그림 위쪽의 동그란 달이 보인다. 비추고 있다. “차가움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달빛에서 소리가 새어 나온다. 속삭이듯이.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고 그렸다” 작업에 대한 이채원의 설명이다. 도시에서 자랐으나 사계절의 변화를 예민하게 느꼈단다. 일렁인다. 그림 속 딱딱하게 뭉쳐있던 눈덩이가 달라 보인다. 몽글몽글해진다. 일그러졌던 마음이 둥그러진다. 체온이 높아진다. 새하얀 조각상에 손을 뻗어본다. 조심스럽게.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발견토토사이트 무소유. 주름이 잡혀있다. 살아있다. 새하얀 얼음의 대지는 죽은 땅이 아니었다. 생명의 흔적이 숨 쉬는 중이다. 다시 보니 식물들이 피어나고 있다. 얼어붙은 땅으로부터. 숨을 쉬어본다. 가만히 멈추어서. 이채원이 그려내는 세계는 이처럼 신비하다.
‘예민하게 살아나는 마티에르’. 이채원의 회화 속 모티브는 피어난다. 생생하고 선연하게. 안기고 싶다. 그녀가 만들어낸 층층이 쌓인 구름 속에. 곁에 눕고 싶다.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고양이와 늑대와 함께. 이제 알았다. <고요의 바다> 속 유기체들의 속내를. 기대어 있다. 몸을 맞대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듬는다. 마음이 녹는다.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을 거 같다. 이채원이 그리는 토토사이트 무소유 동화를 만났으니.
눈길에 나의 발자국을 새기다.
혹한의 날들이다. 이 계절이 끝나기 전 한 번 더 눈이 토토사이트 무소유기를. 새하얀 눈길 위에 나의 발자국을 남기리라. 이성자의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 속 고목처럼 당당하게. 이채원의 <고요의 바다> 속 얼음 조각상에 나의 온기를 맞대며.
우진영 미술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