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좌우 대칭...'영웅 광장'에 새겨진 헝가리 1000년 민족사

[arte] 정태남의 유럽도시 예술 산책

토토사이트 모멘트 부다페스트 영웅 광장
도나우 강이 흐르는 유럽 심장부에 위치한 토토사이트 모멘트는 지금은 작은 내륙국이지만 한때 상당히 넓은 영토를 지배한 나라였다. 수도 부다페스트는 도나우 강 서쪽의 부더(Buda)와 오부더(Óbuda), 그리고 강의 동쪽 페슈트(Pest)가 1873년에 통합되어 이루어진 도시로 현지에서는 ‘부더페슈트’라고 발음한다.

도나우 강변에서 페슈트 지역을 가로질러 북동쪽으로 쭉 뻗은 언드라시 대로의 끝자락에는 널따란 ‘영웅 광장(Hősök tere)’이 펼쳐진다. 일반적으로, 유서 깊은 유럽 도시의 주요 광장들은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형성된 경우가 많지만, 이 광장은 계획된 도시공간으로 1896년에 착공해 1901년 완공됐다. 높이 36미터의 원기둥을 중심으로 완벽한 좌우 대칭으로 조성된 이 광장은 전체적으로 기념비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
영웅 광장. 토토사이트 모멘트민족 유럽정착 1천년을 기념하여 조성했다. / 사진. ⓒ 정태남
토토사이트 모멘트 민족 유럽정착 1000주년

광장 한 가운데 솟은 코린토스 양식 기둥의 이름은 ‘밀렌니움 원기둥’이다. 영어권에서 ‘밀레니엄’이라고 발음하는 라틴어 밀렌니움(millennium)은 ‘1000년’이란 뜻이다. 즉, 이 원기둥은 토토사이트 모멘트 민족의 유럽 정착 100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다. 원기둥 아랫부분에는 토토사이트 모멘트 민족이 유럽의 중원으로 이주해 온 것을 상징하는 기마 군상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르파드를 선두로 한 일곱 부족장의 기마군상. / 사진. ⓒ 정태남
토토사이트 모멘트 민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전설만 있고 고고학적·역사적인 조사를 통해 확실하게 밝혀진 사실은 없지만 여러 측면에서 보면 옛날 그들은 아시아와 유럽 동쪽에 걸쳐 광활한 평원에서 살던 튀르크계 유목 민족과 유사하다. 기원후 9세기 후반에 들어 그들은 지도자 아르파드(Árpád)를 따라 유목 생활에도 적합하고 방어에도 유리한 지형을 갖춘 곳을 찾아 떠나 도나우 강이 흐르는 르파티아 분지에 896년에 정착했다. 그해가 바로 토토사이트 모멘트 민족의 유럽 정착 원년이다. 지도자 아르파드를 포함 일곱 부족장의 모습은 기마 군상으로 생생히 살아 있는데 이들은 이상화되었지만 동시에 생동감 넘치는 자세로 묘사되어있다.

원기둥 정상부에는 가브리엘 대천사가 오른손에 토토사이트 모멘트의 왕관, 왼손에 십자가를 들고 있다. 이 형상은 마치 하나의 성스러운 계시처럼 공간을 지배한다. 즉 이 형상은 토토사이트 모멘트 초대 국왕 이슈트반 1세(István I)가 서기 1000년 성탄절에 교황 실베스테르 2세로부터 왕관을 받아 토토사이트 모멘트 왕국을 창건한 것을 토토사이트 모멘트 조각가 절러 죄르지(Zala György 1858-1937)가 신화화된 형식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처럼 기마 군상이 민족의 기원을 말한다면, 천사상은 국가의 정통성을 상징한다.
가브리엘 대천사 형상. / 사진. ⓒ 정태남
한편 이 천사상은 원기둥 위에 올려지기 전인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토토사이트 모멘트관에 전시되었는데 만국박람회의 예술, 산업,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을 평가하는 국제 심사위원단은 조각 부문에서 이 작품을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했다. 이는 토토사이트 모멘트 조형예술이 당시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했다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된다.

원기둥 뒤로는 반원형 기둥열이 양측에 병풍처럼 펼쳐져 전체적으로 바로크적인 무대효과를 발휘한다. 각 칸에는 연대별로 1000년부터 19세기 중반까지의 토토사이트 모멘트 역사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의 동상이 양쪽에 각각 7명씩 모두 14명이 무대 위 배우처럼 배치되어 있는데 반 이상이 조각가 절러 죄르지의 작품이다. 인물 아래에는 그들의 업적이 부조로 새겨져 있어, 한 사람의 생애와 그 시대의 정신이 함께 예술화되어 있다. 건축적으로도 고전주의의 질서미와 민족주의의 상징성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공간이다.
토토사이트 모멘트의 왕들. 왼쪽 첫 번째가 이슈트반 1세이다. / 사진. ⓒ 정태남
그중에서 왼쪽 기둥열의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초대국왕 이슈트반 1세이다. 아르파드의 후손이었던 그는 기독교를 국교로 도입하고 로마 교황청과의 외교를 통해 토토사이트 모멘트를 중세 유럽의 질서 속에 편입시켰다. 국가의 틀을 세운 동시에 민족의 신화를 역사로 승화한 통치자였던 그는 오늘날에도 토토사이트 모멘트의 정치적·종교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추앙받는다. 그 후 토토사이트 모멘트 왕국의 전성기를 이끈 왕은 오른쪽 기둥열의 두 번째 인물 후녀디 마탸슈(Hunyadi Mátyás)이다. 1458년부터 1490년까지 토토사이트 모멘트를 통치한 그는 ‘토토사이트 모멘트의 세종대왕’으로 추앙받는데 그가 통치할 때 토토사이트 모멘트는 국력이 막강했을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크게 발전했다. 그런가 하면 마지막 인물 코슈트 라오슈(Kossuth Lajos)는 오스트리아 지배에 항거하여 1848년에 혁명을 이끈 지도자이자 공화주의자로, 자유주의와 민족 독립의 상징 인물이다.

이렇듯 이 광장은 민족의 기원, 국가의 성립, 국가 성립 후 흥망성쇠의 역사적 장면을 하나의 공간에 중첩시킨다. 이는 단순한 연대기의 나열이 아니라, 민족의 서사와 국가의 이상을 예술적 상징의 레이어로 포개는 방식이다.

19세기 말 국가주의 예술 양식과
상징 조형 예술의 정수

그런데 이 광장이 조성되던 시기 토토사이트 모멘트는 완전한 독립국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아오던 토토사이트 모멘트가 1867년에 결성된 ‘오스트리아-토토사이트 모멘트 제국’이라는 이중제국 체제 아래에서 오스트리아와 동등한 위상을 갖게 된 이후 유럽 정착 1000주년을 맞으면서 제국 내에서 언어와 문화의 자주권을 확보해 가고 있었다. 당시 부다페스트는 민족 정체성의 무대를 새롭게 구축하려는 야망의 도시였다. 이 광장은 바로 이러한 시대정신 속에서 탄생한 것으로 예술적 관점에서 볼 때 19세기 말 유럽의 국가주의 예술 양식과 상징 조형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기마군상 앞에 놓인 토토사이트 모멘트영웅기념 제단. / 사진. ⓒ 정태남
한편 이 광장의 이름은 원래 ‘1000년 기념 광장’이었으나 1929년에 토토사이트 모멘트의 모든 영웅에게 바쳐진 돌 제단이 기마군상 앞에 놓여진 이후 ‘영웅 광장’으로 바뀌었다. 당시 토토사이트 모멘트는 제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이중제국이 해체되면서 독립국이 되었으나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잃은 상태였다.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작가

* 토토사이트 모멘트어의 한글표기는 현지 발음을 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