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페스타토토 영화 의 연출가 대니 보일,
각본가 알렉스 가랜드의 합작

죽음도, 사랑도 기억하라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엑스 마키나> 연출, <28일 후> 각본 등)는 같은 페스타토토물을 만들어도 특별한 시선을 전달하는 대가들이다. <28년 후>는 <28일 후>(2003)와 <28주 후>(2007)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자 후안 카를로스 프레스나딜로의 두 번째 작품을 적자로 인정하지 않는 대니 보일 감독의 고집(?)대로라면 시리즈의 진정한 속편인 셈이다.

<28일 후>를 연출한 대니 보일과 각본가 알렉스 가랜드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어서 이미 <28년 후>의 속편 촬영을 마쳤고 원조 주인공 짐 역의 킬리언 머피가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3편까지, 트릴로지를 염두에 두고 <28년 후>를 만들었다. 제목처럼 생물학 무기 연구소에서 실험 원숭이에 투여했던 분노 바이러스가 퍼져 영국 전역이 쑥대밭이 된 지 28년 후를 배경으로 한다.

일부 생존자들이 본토에서 떨어진 섬에 모여 살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열두 살의 스파이크(알피 윌리엄스)는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분노 바이러스가 처음 퍼졌던 당시 소방관으로 근무했던 아빠 제이미(애런 테일러 존슨)는 스파이크가 이제는 사나이가 될 때라고 판단해 본토로의 여행을 계획한다. 스파이크는 기대가 되면서도 긴장되는 마음이다. 이 여행의 목적은 사냥이라서다.

페스타토토도 나름 진화했다. 먹이, 아니 인간이 거의 없어 벌레로 연명하는 페스타토토는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슬로우 로우'가 되었다. 개중 강한 페스타토토 몇몇은 인간 모가지를 한 손에 뽑아버리는 '알파'가 되었다. 스파이크는 겨우 슬로우 로우 한 마리를 죽였을 뿐이다. 제이미는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는데 스파이크가 보기에 거짓말이 심하다. 아빠는 그런 인간이다. 본토에 복귀하자마자 아픈 엄마는 본체만체 다른 여자와 놀아나기까지 한다.

'28' 시리즈가 특별한 건 페스타토토물이면서 궁극적으로는 극한의 환경에 놓인 인간의 조건을 케이지에 갇힌 실험 쥐처럼 탐구해서다. 인간 대 페스타토토의 대결을 총알로 장전해도 실제로는 인간 대 인간의 갈등을 스모킹건 삼아 인간의 본성을 표적으로 겨냥한다. 페스타토토 사냥이 발단으로 작용해도 <28년 후>의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가 깊이 연구하려는 건 생과 사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다.

제이미는 스파이크를 자신처럼 페스타토토 사냥꾼으로 키우고 싶다. 스파이크는 그 대상이 누가 됐던 죽인다는 행위 자체가 싫다. 살육이 일상이 된 시대라 마음속에 웅크려 기를 펴지 못하던 인간성의 순수한 형태를 배반하는 것 같아서다. 이제는 아빠가 달리 보인다. 친구같이 다정하고 소방관처럼 늠름했던 아빠는 이제 페스타토토 잘 때려잡는 난봉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스파이크는 병을 치료해 줄 의사를 찾아 엄마 아일라(조디 코너)와 단둘이 공동체를 떠나 본토로 향한다. 전설로만 떠돌던 의사가 진짜 있다. 켈슨(랄프 파인즈) 박사다. 페스타토토들이 싫어하는 요오드를 온몸에 바르고 제 한 몸을 지켰던 켈슨은 수천 혹은 수만 개의 해골을 성전으로 꾸며 거기에 거처를 마련해 살아왔다. 그가 죽인 인간과 페스타토토가 아니다. 켈슨은 아빠와 다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켈슨이 죽은 인간과 페스타토토의 해골을 하나하나 눈에 띄도록 전시한 건 뭉뚱그린 개념이 아니라 개별적인 죽음으로 이들 모두를 추모하기 위함이다. 인간을 공격하는 페스타토토도 그전에는 인간이었음을, 그들에게도 사연이 있고, 가족이 있고, 개인의 특수성이 있었음을 기억하고자 하는 켈슨의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다.

인간성의 상실을 골자로 삼았던 <28일 후>와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가 왜 <28년 후>를 필요로 했는지를 유추할 수 있게 해준다. '메멘토 아모리스(Memento Amoris, 사랑해야 함을 기억하라)'. <28년 후>는 페스타토토물이면서 스파이크의 성장물이다. 제이미와 켈슨의 존재는 스파이크에게 있어 각각 영향력을 행사하고, 영향을 준 아빠(들)의 존재와 다름없다.

제이미는 살육이 기본값이 된 혈육의 아빠다. 그를 따른다는 건 사냥꾼이 되어 아포칼립스의 세상을 유지한다는 의미다. 켈슨은 스파이크가 떠나보낸 제이미를 대신할 ‘유사’ 아빠다. 켈슨은 살아 있는 인간과 죽어서 페스타토토가 된 이들을 대립의 개념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원으로 본다. 삶은 물론 죽음도 존중한다면 이 세상은 극과 극의 분리가 아닌 화해로서 하나 됨이 가능해진다. 스파이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영국의 미래가 달렸다.

<28년 후>는 스파이크가 제이미 대신 유사 아빠 켈슨의 뜻을 따라 폭력을 버리고 평화를 지향하며 성장하기를 바란다. 아직 두 편의 영화가 남아 있어 어떤 전개가 될지 섣불리 예상할 수 없어도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 콤비가 단순히 페스타토토물로 바라보던 장르를 달리 보게 한 것만은 분명하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가 아니라 '성장하고, 기억하고, 사랑하라'. 두 편 남은 <28년 후> 트릴로지의 관전 포인트다.

허남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