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국내 자산운용업계에 낯선 용어 ‘브릭스’가 등장했다. 한 해외펀드 매니저가 신흥국 시장의 잠재력에 주목하며 국내 최초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펀드를 선보인 것이다. 공무원연금공단에서 해외투자팀장을 이끄는 염재현 팀장(사진) 얘기다. 그는 최근 글로벌 자본시장과 해외 문화 등을 소개한 저서 <염재현의 지구촌 이야기>를 펴냈다.

염 팀장은 지난 27일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이 수익만 추구하는 차가운 길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따뜻한 온기가 오고 가는 세계라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해외 자본시장 투자 대중화를 이끈 1세대 펀드매니저로 꼽힌다. 중앙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제대학원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노란우산공제회, 한국교직원공제회를 거쳐 코레이트자산운용 글로벌운용본부장을 지냈다.

염 팀장은 “대학생 시절 비행기표 한 장 달랑 들고 떠난 무계획 유럽여행에서 인생이 크게 달라졌다”며 “낯선 환경이 주는 두려움을 극복하며 도전을 꺼리지 않는 성격이 됐다”고 했다. 다져진 도전정신으로 직장을 다니며 12년에 걸친 도전 끝에 공인재무분석사(CFA) 시험에 합격한 이야기, 40대 초반 실직해 1년이 넘는 백수 시절 ‘뭐라도 해야겠다’며 도전한 제빵기능사 자격증 취득 이야기도 책에 담았다.

2000년대 초반 국내 자본시장의 모습도 생생하게 담았다. 그는 “당시 해외펀드는 피델리티, 블랙록 등 외국 운용사에 수수료를 내고 운용 전반을 맡기는 방식이었다”며 “국내 자산운용사가 해외주식 등에 직접 투자하는 펀드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고 했다. 해외펀드를 직접 운용하려면 현지 실사를 통한 정보 파악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업계가 언젠가는 부딪쳐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해외펀드 개발에 나섰다. 중국 펀드, 베트남 펀드같이 해외 특정 국가나 특정 종목을 겨냥한 펀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투자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해외 증권거래소와 유망 기업을 방문하며 겪은 에피소드가 산처럼 쌓였다. 그는 “해당 국가에 투자할지를 결정하려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등을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