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민 출판사 '무제'와 협업하여
듣는 소설 <첫 여름, 완주> 펴낸
소설가 칼리토토의 감각적 문학세계

‘서사의 공감각적 확장’이라는 참신한 기획 의도부터 배우·개그맨 등 유명 연예인이 총출동한 녹음 작업, 비디오 타입의 생기 넘치는 디자인, 전시·북토크·인터뷰 등 전방위적 마케팅으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희곡을 떠올리게 하는 지문·대화체 위주의 플롯 구성은 높은 가독성으로 젊은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독자와 작품세계 간 정서적 호흡을 중시함으로써, 묘사 필력과 담론 설파 위주인 기존 장편소설 문법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그 중심에는 불안한 존재의 내면 심리와 인간관계의 불가해성을 묘파해나가는 김금희만의 섬세한 내공이 자리한다. 슬픔을 어루만지는 마음의 복화술사, 김금희의 문학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탈된 존재의 비애와 명랑한 공감의 확장
<첫 여름, 완주>에서 주인공 열매의 삶은 ‘사랑은 마음에 지은 것이라 잃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할아버지의 위로에도 어쩐지 계속 고단하기만 하다. 목소리의 상실, 친한 언니의 배신, 완주리에서 만난 독특하고 기이한 인간 군상들은 열매의 ‘세계 인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식물을 애정하는 작가의 시선답게, 청초한 녹음의 첫 여름 정경은 열매의 마음을 조금씩 다독여나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반건조 오징어들의 짓눌린 삶이 배회하는 ‘빌딩 숲’이 아닌, 상처 입고 주변부로 비켜났지만 자신만의 꿈을 간직한 이들의 ‘진짜 숲’에서 열매의 자아는 영글어진다. 그렇게 열매의 여름은 당황스럽게 다가왔지만, 일상을 연대하며 완주할 수 있는 마음을 키웠다는 점에서 진실한 계절이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책 <한국 문학의 위상>에서 이렇게 논했다. “문학은 억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억압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비억압적인 것은 억압적인 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김금희의 신작은 이 같은 문학적 진실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1979년 부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란 김금희는 인하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단편의 미학을 추구하는 소설 문단의 전통에서 벗어나 장편 중심의 작품활동으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해 왔다. 장편의 요체는 기승전결 구성 못지않게 사건의 흐름을 유지하고 때로 급전시키면서 끌고 나가는 필력의 힘에 있다. 김금희 특유의 경쾌한 문체는 읽는 이의 몰입감을 배가시키며 문학계에 장편의 매력을 구현시켰다. 배우 박정민 역시 <토토사이트 추천신문> 인터뷰에서 김금희를 첫 기획 작가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문장이 너무 아름답고 예쁘지 않나. 가슴을 쿡쿡 찌르는 듯한 느낌의 문장들이 좋았다”고 말한 바 있다.
칼리토토의 일관된 관심은 동시대에서 이탈된 존재들의 비애를 들여다보고 사회 구조적 불합리성의 문제점을 탐사하는 데 있었다. 인기작 <너무 한낮의 연애>는 대기업에서 권고사직이나 다름없는 좌천성 인사를 당한 주인공이 16년 전 옛 후배와 나눈 사랑의 기묘한 추억을 더듬어나가는 내용이다. 동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경애의 마음>에서는 비극의 토대 위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각자의 삶을 지키는 힘이 된다는 것을 역설했다.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청춘 시절 관계와 성취의 실패담을 복기하면서 소외된 것들의 성장통을 조명한다. 이처럼 칼리토토가 펼쳐내는 공감의 울림은 때로 단호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명랑했다. 물론 그가 그려 나간 사랑과 긍정의 풍경들이 마냥 근사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작가는 비루하고 유치하게만 느껴졌던 생의 순간들까지 직시하면서 성숙한 마음의 의미를 되새긴다.

“상이라는 게 격려하기 위해 작가에게 주는 것인데, 작가가 고유하게 갖고 있는 저작권을 양도하라고 조항을 달아서 저한테 그 상을 준다고 하셔 가지고…. 이걸 문제 삼아서 앞으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좀 항의를 많이 했죠.” (2021년 5월 2일자 JTBC 예능 프로그램 ‘방구석 1열’에서)
현대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문학동네 젊은작가상까지. 내놓는 신작마다 독자와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문단의 기대주로 자리를 잡아가던 김금희의 진가를 다시금 주목하게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2020년 1월 이상문학상을 거부하며 문학 출판계의 잘못된 관행을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문학상 운영 출판사인 문학사상사가 내건 수상 조건에는 저작권 양도 및 표제작 불허 등 작가 고유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불합리한 조항들이 있었다. 김금희에 이어 최은영, 이기호 등 수상자로 선정된 다른 소설가들도 거부에 동참했다. 김금희는 2020년 5월 <토토사이트 추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그냥 넘기면 앞으로 작가 생활을 하는데 못 견딜 것 같았다”며 “문학과 출판이 사람의 정신적 영역을 다루는 산업인데 그런 부당함을 생산자인 작가에게 요구한다는 게 납득이 안 됐다”고 직격했다.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만들어내면서 고유하게 생기는 권리를 ‘저작권’이라고 하고, 작가에게 그것은 생계와 자신의 존엄 그리고 이후의 노동을 반복할 수 있는 힘이다. (중략) 언니가 사 들고 온 그 많은 책과 수상작품집을 받아 읽으며 작가가 된 나는 마감들을 되도록 성실히 지켜나가며 저작 노동으로 생활한다.” (김금희,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 ‘노동의 자세’ 중)
‘일의 존엄과 노동의 가치를 긍정하며 현실의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는 것.’ 김금희의 문학세계가 꾸준히 독자들의 반향을 얻는 이유다. 사회 현실의 부조리함을 개탄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자신의 ‘일과 일상’을 놓지 않는 단단한 회복 탄력성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하는 것이다. 이는 초연한 도피나 가여운 정신 승리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과 나아갈 길을 끈질기게 천착해가면서 인간으로서 존엄을 되찾게 한다. 현실이 괴로우니 생각을 말자는 게 아니라, 주변과의 소통으로 신념을 갖고 때때로 이해하면서 어려움을 함께 헤쳐가자는 연대의 손길인 것이다.

“김금희 작가의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감정적으로 수선스럽지 않다’라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소설은 인물의 심리를 깊숙하게 다루기 때문에, 그 과정 속에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과장하는 작가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김금희 작가는 그런 부분이 없이 무척이나 담백하면서도 그런 감정들을 절묘하게 담아낸다는 측면에서 놀랍고, 항상 신뢰감을 주는 작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2024년 11월 29일 유튜브 채널 ‘Btv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방송 중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지난해 11월 이달의 책이자, 그해의 책으로 김금희의 역사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선정하면서 특유의 문장력과 내면 묘사를 호평했다. 이동진 평론가는 “김금희 소설의 대사를 읽다 보면 위트, 센스, 유머가 함축돼 있음을 느낀다”며 “(이 소설의) 주인공이 수리 보고서를 만들기 위해 일련의 어떤 일들을 하는 과정에서 동료와 나누는 대화 장면들이 소설을 읽는 재미를 흥미롭게 제공한다”고 평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이동진의 추천에 이어 익산시 ‘한 권의 책’, 광명시와 원북 원포항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이동진의 말처럼 이 소설은 김금희만의 생기있는 문체로 장구한 서사를 엮어 나가면서도 예전 작품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상처를 딛고 성장하는 개인들 간의 교감과 이해심, 사회적 소외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나아가 ‘역사의 격동 속에서 실존해 온 것들의 존재감과 정체성’을 고찰한 것이다.

“언뜻 나와 무관해 보이는 어떤 존재, 한 번도 나 자신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어떤 존재, 즉 ‘타인’의 삶이 지금 내 삶 곳곳에 틈입한 시공간을 이룸으로써 하나의 역사로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이해하는 일. 그것이 바로 소설의 역할이며, 소설이 역사를 그려내는 방식이다.” (선우은실 문학평론가, <창작과 비평> 2024년 겨울호, ‘김금희 작가 조명 - 이야기는 어떤 역사를 쓰는가’ 중)

“인간처럼 펭귄도 개중 좀 늦된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고마울까. 가장 강한 것만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힘과 속도를 지닌 존재들이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질서라는 사실이. (중략) 나는 잘 있으라고, 겨울을 꼭 잘 견디라고 말하며 아쉽게 돌아섰다. 언덕을 내려오는데 남극에 오고 싶어 한 정확한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싶어서였다.” (2024년 11월 9일 자 <한겨레>, 김금희의 나의 폴라 일지 - 남극을 떠나오며 중)

이해에서 믿음으로, 모순의 생을 완주하다
“어저귀는 숲의 모든 것들은 친교 속에 존재한다고 했다. 나무만 해도 뿌리와 뿌리가 맞닿고 흙 속의 곰팡이가 연결선을 만들면서 안부를 전하고 서로 위급한 신호를 보내고 영양분을 빌려주기도 한다고. 자기 몸에서 태어난 어린 묘목을 돌보며 오래된 지혜를 나누어 주는데 숲의 동물들도 그런 나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다고. 이렇게 세상 모든 존재가 우주 속에서 끊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지만, 인간은 오래전 이탈해 자기들만의 방식을 선택했고 지금이 그 결과라고 했다. 다만 몇몇 인간들은 그런 관계를 시초에 가깝게 유지한 채 존재하는데 어저귀도 그중 하나였다.” (김금희 소설 <첫 여름, 완주> 중)

신승민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