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돌아온 봉준호 "'미키 17'은 땀내 나는 SF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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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영화 기자간담회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로 시작해 칸 황금종려상을 안긴 <기생충>까지 봉준호 감독(56)이 보여준 영화적 미학은 언제나 ‘삐딱한 휴머니티(인간성)’로 요약된다. 6년 만에 내놓는 8번째 장편 <토토사이트 하피 17> 역시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서 존엄하게 산다는 것’을 묻는다. 제작비만 1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블록버스터 SF지만, 봉 감독은 20일 서울 한강로3가 CGV용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작에 대한 소개를 이렇게 갈음했다. “과학에 관심이 없는 터라 그런 얘긴 다 뺐어요. 우리끼리 ‘발 냄새 나는 SF’라고 할 정도로요.”
오는 2월28일 한국에서 전세계 최초로 개봉하는 <토토사이트 하피 17>은 충무로뿐 아니라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올해 최고 기대작 중 하나로 꼽힌다. ‘익스펜더블(소모품)’이란 이름으로 우주 행성 개척에 투입돼 궂은일을 도맡는 복제인간 토토사이트 하피(로버트 패틴슨)의 삶을 그린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쉬튼의 SF소설 <토토사이트 하피7>이 원작이다. 2022년 미국에서 원서가 출간되기 전 초고를 읽은 봉 감독이 차기작으로 점찍고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을 만큼, 세계관이 인상 깊다는 평가다. 크리스토퍼 놀런의 <인터스텔라>(1억6500만 달러), 리들리 스콧의 <마션>(1억5500만 달러) 등 거장들의 블록버스터 SF영화와 견줄만한 초대형 제작비가 투입됐다.
원작 세계관이 강렬하거나 많은 제작비가 투입될 경우 감독의 색깔이 사라지기 쉽지만 <토토사이트 하피 17>에는 봉준호의 색채가 여실히 느껴진다. 이날 봉 감독이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긴 ‘신의 한 수’처럼 AI마저 절대 쓸 수 없는 시나리오를 밤새 고민한다”고 밝힐 정도로 각본 작업에 신경 쓰기 때문. <설국열차>와 <기생충>에서 드러난 보이지 않는 계급에 대한 문제의식이 신작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존 블록버스터 SF영화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봉 감독은 “계급투쟁이라는 거창한 정치적 깃발을 들고 있지 않지만, 전작들처럼 계급 문제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면서 “사회나 정치 문제를 심각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풍자할 수 있다는 게 SF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슈퍼히어로 같은 인물이 나오면 간단하고 싱겁지만, 힘 없는 불쌍한 인간이 고군분투하면 드라마나 나온다”며 “늘 불쌍하고 문제 많은 캐릭터에 끌린다”고 덧붙였다.
로버트 패틴슨 “봉준호는 배우들의 로망”
이날 봉 감독과 함께 간담회에 참석한 배우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도 돋보인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나 <더 배트맨> 등에서 보지 못했던 가볍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연기를 선보인 그는 봉 감독이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부터 점찍은 캐스팅이다. 봉 감독은 “슈퍼 히어로 영화도 출연했지만 <굿타임>이나 <라이트 하우스> 같은 독립 영화에서도 놀라운 연기를 선보였다”면서 “약간 멍청하고 불쌍한 17번째 토토사이트 하피와 예측불가능하고 기괴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18번째 토토사이트 하피를 커버하는 1인 2역을 해낼 수 있는 연기력”이라고 했다.
<토토사이트 하피 17>은 내달 개막하는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전 세계 처음으로 상영된다. 6년 만에 돌아오는 봉준호 신작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 봉 감독은 “25년 감독 경력 최초로 러브 스토리가 나와요. 멜로영화라 하면 좀 뻔뻔스럽겠지만, 사랑의 장면들이 있는 점이 개인적으론 되게 뿌듯했어요.”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