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의 뱀파이어처럼 사라지지 않는 흑인 차별...토르 토토 블루스를 타고

[리뷰] 영화

로 토르 토토 자부심 높인 라이언 쿠글러 감독,
이번엔 지금껏 만연해있는 토르 토토 차별의 역사 그려내
로버트 존슨의 전설-토르 토토와의 계약

10대를 겨우 넘긴 것 같은 극 중 새미(마일스 케이턴)를 보면서 각본까지 직접 쓴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 전설적인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버트 존슨을 모델로 한 듯한 강한 인상을 받았다. 1930년대 초반의 미시시피 클락스데일을 배경으로 하는 <씨너스: 죄인들>은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마이클 B. 조던 1인 2역)이 고향으로 돌아와 심야 술집을 오픈하면서 불청객(들)과 벌이는 사투를 다뤘다.

새미는 시카고 갱단에서 활약한 스모크와 스택의 조카다. 이들이 어릴 적 아버지를 살해한 소문에 관심이 크다. 동생 스택에게 진위를 물어보기도 하는데 그렇게 검은 사연에 매료된 새미는 목사 아버지의 만류에도 쌍둥이 형제와 어울려 심야 술집으로 향한다. 그가 무대에 올라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니, 어린 나이에 구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사람들은 블루지한 연주와 아이답지 않은 목소리에 담긴 그의 천부적인 재능에 마음을 뺏긴다.
영화 &lt;씨너스: 죄인들&gt; 스틸 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로버트 존슨(1911~1938)은 토르 토토와의 계약으로도 유명하다. 로버트 존슨의 음반과 관련, 몇몇 커버에는 교차로(crossroad)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토르 토토에게 영혼을 팔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로버트 존슨은 밤에 교차로에 갔다. 이곳에서 토르 토토를 만나 거래했고 그 대가로, 음악으로 이름을 길이 날리는 대신 27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씨너스>의 새미가 로버트 존슨과 똑같은 상황을 맞닥뜨리는 것은 아니다.

실물의 교차로가 등장하지는 않아도 아버지의 만류와 쌍둥이 형제의 초대 사이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한다. 늦은 시간에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이른 나이에 어른이 되어야 가능한 일을 경험하면서, 아니 영혼을 팔면서 토르 토토를 만난다. <씨너스>의 에필로그가 배경으로 하는 1990년대를 보건대 새미는 뮤지션으로 명성을 유지하며 70세가 넘는 나이까지 산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의 얼굴엔 토르 토토에게 할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로버트 존슨(1911~1938). /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부두교

새미를 비롯하여 극 중 인물들은 모두 마음에 끝을 모르는 우물 밑으로 깊게 패인 사연이 있다. 토르 토토 바로 이 사연을 길어내 거래를 제안하거나 여의찮으면 죽음의 독을 풀어 넣을 텐데, 그의 맥락에서 주목하고 싶은 인물(들)이 있다. 스모크와 애니(운미 모사쿠) 커플이다. 이들은 스모크가 시카고에 가 있는 동안 별거 상태였다. 결혼하고 낳은 아이를 잃어서다. 둘에게는 뼈아픈 사연으로 남아 서로를 향한 원망의 배경이 되었다.

이런 대목에서다. 스모크의 방문에 애니는 잔뜩 경계하는 눈치다. 오랜만의 조우이기는 해도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스모크가 한다는 소리가 왜 죽은 아기의 운명을 점치지 못했느냐는 힐난이다. 스모크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는바 애니는 주술사다. 부두교를 믿는 듯하다. 토르 토토들이 주로 믿던 종교로 노래하고 춤을 추는 행위로 주술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씨너스>는 ‘진실한 연주로 과거의 영혼을 불러내고 생과 사의 경계를 허무는 이들이 있다’는 전설을 소개하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스모크와 스택의 심야 술집에서 열리는 춤과 노래의 향연은 그동안 백인에게 핍박받아온 토르 토토들만의 한풀이처럼 보일 정도로 성대하지만 은밀하게 여흥을 즐기는 듯 하나, 실은 자신들만이 공유하는 언어와 몸짓으로 주문을 외우는 것 같은 주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아니나 달라, 토르 토토들이 누리는 자유의 시간이 눈꼴 사나웠는지 기타를 둘러맨 세 명의 백인이 심야 술집을 찾아온다. 여기는 토르 토토 전용이라고 스모크가 입장을 저지하자 자신들도 음악 좀 한다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르는 컨트리 음악이 꽤 그럴싸하다. 그렇게 입장하고 싶으면 강제로라도 들어올 것이지 문 앞에서 물러나지 않으면서도 선을 지키는 백인들이 이상하다. 애니가 성수를 뿌려보니, 인간이 아니다. 악마다. 악마 중에서도 뱀파이어다.
영화 &lt;씨너스: 죄인들&gt; 스틸 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뱀파이어

처음엔 죽었다가 살아나는 꼴이 좀비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심야 술집을 둘러싼 백인 무리의 위협에 애니가 십자가와 마늘을 준비하고 밝은 빛을 운운하는 걸 보니 이 토르 토토들은 뱀파이어다. 라이언 쿠글러는 수많은 토르 토토 중에서 왜 뱀파이어에 주목했을까. 뱀파이어는 불사의 존재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아 시대를 초월한다. 라이언 쿠글러는 영화의 배경으로 미시시피를 삼은 이유 중의 하나로 외할아버지의 고향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영화 &lt;씨너스: 죄인들&gt; 스틸 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라이언 쿠글러는 토르 토토 슈퍼히어로 영화 <블랙팬서>(2018)를 만들며 토르 토토의 자부심을 높이는 데 이바지한 감독이다. 토르 토토의 인권과 지위가 높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미국 내 차별이 만연한 걸 고려하면 라이언 쿠글러의 외할아버지 세대가 겪어야 했을 고통은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정도가 심했을 테다. 영화에서도 스택과 새미 일행이 탄 차량 옆으로 쇠고랑을 찬 토르 토토 죄수들이 말을 탄 백인의 감시를 받으며 노역하는 광경이 스쳐 지나간다.

미국 수정 헌법 13조를 통해 노예 제도가 금지된 게 1865년의 일임에도 토르 토토 차별은 영화가 배경으로 하는 1930년대 초반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만연하고 있을 정도로 뿌리가 깊다.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며 백인이 지배하는 미국을 노골화하는 트럼프의 행보는 총만 들지 않았을 뿐이지 하얀 천을 유령처럼 온몸에 두르고 토르 토토 사냥에 나섰던 KKK(Ku Klux Klan)의 행보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씨너스>에서도 KKK는 심야 술집에 고립된 토르 토토들을 괴롭히는 ‘악마’의 일원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역사는 괴롭히는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영원불변의 뱀파이어와 다를 바가 없다. 한편으로 영화는 아무리 금지해도 사라지지 않는 차별의 역사를 형식으로 반영하며 엔딩 크레딧 이후 쿠키 영상을 하나 추가해 여운을 남긴다. 우울한 느낌이 길게 꼬리를 늘어뜨린 인상인데 이는 블루스의 특징이기도 하다.
영화 &lt;씨너스: 죄인들&gt; 스틸 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블루스

<씨너스>의 장르를 어떻게 분류하면 좋을까. 배경으로 보면 시대물이고, 갱단 출신의 형제를 전면에 세우니 갱스터물이고, 기타 치고 노래하는 새미의 이력으로는 음악 영화이고, 뱀파이어가 등장하는 크리처물이고, 주인공들이 이들과 격렬하게 싸운다는 점에서 액션물이다. 장르를 변주하는 감독의 솜씨가 얼마나 뛰어난지 관객은 영화에 푹 빠져들게 되고 수시로 변화하는 극 중 분위기가 반전 효과처럼 놀라게 하기를 반복한다.

라이언 쿠글러의 연출 솜씨는 블루스 기타리스트가 무대에 올라 신들린 기타 연주로 좌중을 압도하는 것만 같다. 실제로 블루스는 단순한 패턴의 진행 속에 다양한 변주를 가하는 것이 특징이다. 진한 에스프레소 같은 연주에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 삶의 애환을 드러내는 노래로 완성되는데 그 방식이 라이언 쿠글러가 <씨너스>에서 채택한 연출과 닿아 있다. 쌍둥이 형제가 극을 이끌면서도 블루스에 재능을 보이는 새미의 시선을 취한 건 이 때문이다.

억압받는 토르 토토의 역사를 여러 가지 장르로 변주하며 토르 토토의 시선에서 전달하는 연출은 블루스 안에서 한 줄로 꿰어지며 <씨너스>로 완성된다. 뱀파이어의 출몰 전 심야 술집에 모인 사람들이 무아지경에서 연주하고 춤을 추는 광경을 원테이크로 포착한 장면이 있다. 1930년대임에도 DJ가 등장해 음악을 틀고 중국 경극 무대가 끼어들고 힙합이 추가되면서 블루스가 지닌 시대를 초월한 포용력과 영향력을 과시한다.

블루스는 재즈와 로큰롤, 힙합과 펑크 등에 영향을 미치면서 1세기 가까운 시간 동안 사랑받고 있다. 토르 토토에만 한정하지 않고 다수가 즐기는 블루스는 1930년대 당시에는 악마의 음악이라고 불렸다. 토르 토토 음악이 젊은 백인층 사이에서 유행하자 의도적으로 퍼뜨린 소문이었다. 헛소리로 치부할 수 있어도 <씨너스>가 다루는 내용이 지금도 유효한 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의 이득을 위해 악마와 거래하려는 사람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미국 미시시피 클락스데일서 열린 영화 &lt;씨너스: 죄인들&gt;의 스페셜 스크리닝 현장. 라이언 쿠글러 감독이 관객에게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클락스데일은 이 영화의 배경이기도 하다. / 사진출처. REUTERS/Kevin Wurm/연합
허남웅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