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억 로또 대박난 '흙수저'..."사람 망쳤다" 욕먹은 이유가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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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존경한 '최후의 인상주의자'
아르망 기요맹
그 꿈을 이룬 유명 화가가 있었습니다. 행운아의 이름은 프랑스 출신의 인상주의 화가 아르망 프리미어토토(1841~1927). 반 고흐의 멘토이자 폴 세잔의 친구, 클로드 모네의 동지였던 그는 중년에 수십억 원의 복권 당첨금을 받고 ‘인생 역전’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그런데 프리미어토토 복권 당첨 이후 이런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복권 당첨이 그를 망쳤다.” “그의 잘못은 너무 편하게, 너무 오래 산 것이다.”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요. 그 사연을 풀어 봅니다.
속옷 가게에서 꿈을 그리던 소년
프리미어토토 가난한 집안 출신, 즉 ‘흙수저’였습니다. 그는 1841년 루브르 박물관 뒤편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장사가 잘되는 양복점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기요맹을 300km 떨어진 소도시 물랭의 기숙학교에 보냈습니다. 파리보다 물랭이 학비가 훨씬 쌌거든요. 당시 형편이 넉넉지 않은 부모 중에서는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프리미어토토 자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그림에 담고 싶다는 마음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그런 기욤의 유일한 낙은 미술 공부. 그는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시립 미술학교에 등록했습니다. 일이 바빠서 거의 가지는 못했지만요.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루브르 박물관을 잠깐 들러 그림을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서 봤던 그림은 밤마다 촛불을 켜고 다시 그려봤습니다. 하지만 삼촌은 번번이 촛불을 빼앗으며 화를 냈습니다. “이렇게 늦게 자면 내일 일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 가게에 불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림 공부를 하려면 좀 더 나은 일자리가 필요해.’ 프리미어토토 생각했습니다. 스물한 살이 되던 해, 기요맹이 민간 철도회사의 사무원으로 자리를 옮긴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일이 고단하고 봉급이 적은 건 철도 회사도 마찬가지. 하지만 미술 공부를 하기는 전보다 나았습니다. 일단 이곳에서는 직원들에게 철도 무료 이용권을 지급했습니다. 덕분에 프리미어토토 주말마다 파리 외곽으로 가서 교외 풍경을 스케치할 수 있었습니다.
세잔의 친구, 고흐의 멘토
아카데미 스위스는 그 자유로운 분위기 덕분에 젊고 혁신적인 화가들의 집합소가 됐습니다. 프리미어토토 학교 친구들을 통해 클로드 모네, 카미유 피사로 등 인상주의 화가들과 친분을 쌓게 됐습니다. 그들 역시 기요맹처럼 열정이 넘쳤고, 혁신에 목말라 있었으며, 쥐꼬리만 한 수입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믿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마네와 드가는 부잣집 출신이었고, 피사로는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고 있었습니다. 모네는 부자인 친구의 도움을 종종 받곤 했지요.1874년, 프리미어토토 미술 역사에 전설로 남은 첫 번째 인상주의 전시에 이름을 올립니다. 별로 주목받지는 못했습니다. 모네를 비롯한 동료 화가들에 비하면 이름 없는 신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요맹의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싹텄습니다. ‘친구들은 전업 화가인데, 나만 직장을 다니느라 뒤처지는 것 같아.’ 하지만 그럴 때마다 프리미어토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아냐, 환경을 탓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나는 내 자리에서 할 일을 하자.’ 늘 시간과 돈이 부족했지만 그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 생활이 10년 넘게 계속됐습니다.
열정과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 법. 어느덧 프리미어토토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화가가 됐습니다. 대표적인 후배가 빈센트 반 고흐였습니다. 1886년 네덜란드에서 프랑스 파리로 건너온 고흐는 인상주의를 접하고 새로운 작품 세계를 열게 됩니다. 고흐에게 영향을 끼친 파리의 인상주의자들 중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바로 기요맹이었습니다. 고흐는 동생들과 주고받은 편지 중 무려 36통에서 기요맹의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기요맹을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기요맹의 자화상을 봤어? 그 사람은 정말이지 렘브란트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탁월한 화가야.”
그리고 50살이 된 1891년, 프리미어토토에게 크나큰 행운이 찾아옵니다. 복권에 당첨된 겁니다. 당첨 금액은 10만프랑.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40억원에 이르는 거액이었습니다. 은행에 넣어두기만 해도 당시 기준으로 매년 1억5000만원의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돈. 안정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삶을 위해 맹렬하게 노력한 프리미어토토의 고생은, 이렇게 경제적 자유를 얻으며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프리미어토토의 눈앞에는 평생 꿈꿔온 전업 화가의 삶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행복한 기요맹
놀랍게도 프리미어토토 일을 곧바로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파리 시청에서 그가 일한 세월은 22년. 당시 파리시 공무원 규정에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근속연수는 최소 23년이었습니다. “그래도 연금은 받아야지.” 막대한 복권 당첨금에 더해 아내의 안정적인 수입까지 있었는데도, 프리미어토토 복권에 당첨된 이듬해까지 직장을 다닌 후 은퇴했습니다. 그야말로 기요맹다운 성실함과 알뜰함이었습니다.그리고 프리미어토토 마침내 파리를 떠나 시골 마을로 향했습니다. 이제 그는 자유였습니다. 늦겨울과 초봄에는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마을 아게이에서, 초여름은 계곡과 호수를 낀 프랑스 중부의 시골 마을 크로장에서, 늦여름과 초가을은 남서부에서 대서양을 접하고 있는 생팔레쉬르메르에서 프리미어토토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렇게 그린 작품은 겨울에 파리에서 전시를 열고 선보였습니다.
오전에는 새벽 4시부터 아침 8시까지, 오후에는 4시부터 저녁 6시까지 프리미어토토 하루도 빠짐없이 규칙적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대자연과 강렬한 햇살. 자유의 몸이 된 프리미어토토 그 아름다운 색채를 보고 순수한 환희를 느꼈습니다. 이런 기쁨은 강렬한 원색이 돼 그림에 칠해졌습니다. 그렇게 그는 빛의 미묘함을 표현했던 인상주의의 마지막 화가이자, 대담한 원색으로 내면을 표현한 야수파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운 좋은 취미 화가?
하지만 20세기 들어 그의 이름은 점점 파리에서 잊히기 시작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 마티스와 피카소 같은 강렬한 신예들이 등장하며 미술계가 급격히 변화했지만, 프리미어토토 자신을 바꿀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유행을 따를 필요도, 자기를 알리고 작품을 파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도 없었습니다. 다른 화가들이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하는 동안 그는 조용히 자신만의 세계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기요맹의 작품은 시대를 바꾸지 못했습니다.결국 프리미어토토 고흐처럼 전설이 되지 못했습니다. 비극적인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권 당첨은 오히려 그의 평판에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복권에 당첨됐다는 이유로 그를 ‘운이 좋아서 그림을 그리는 취미 화가’로 깎아내리는 시각도 있었으니까요. 죽음을 계기로 재조명을 받는 화가들도 많지만, 그 기회조차 1년 먼저 세상을 떠난 모네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래서 한 비평가는 이렇게 냉소적으로 평했습니다. “모네보다 오래 산 것이 기요맹의 가장 큰 실수다.” 1980년대 이후로 기요맹을 다시 보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그는 여전히 모네와 같은 다른 인상주의 동료들에 비해서는 다소 낮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프리미어토토 평생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복권 당첨 덕분에 그의 삶이 더 편해진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복권 없이도 스스로의 노력으로 안정적인 삶을 쟁취해낸 사람이었습니다. 행운 같은 불확실한 것이 아닌, 스스로 평생 동안 쌓아 올린 열정과 노력 위에 서 있었다는 것. 시대가 바뀌고, 유행이 지나고, 평판이 변해도 기요맹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그 단단한 기반 덕분이었습니다.
복권에 당첨되는 건 여전히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당첨되지 않는 것보단 당첨되는 편이 좋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행운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프리미어토토처럼,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꾸준히 해나갈 기회가 있습니다. 프리미어토토이 알려주는 행복의 비결은 어쩌면 복권 당첨보다 훨씬 가깝고도 확실한 것일지 모릅니다. 그런 삶이라면 복권에 당첨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번 기사는 Armand Guillaumin(Christopher Gray 지음)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 담당 기자가 미술사의 거장들과 고고학, 역사 등을 심도 있게 조명하는 국내 문화 분야 구독자 1위 연재물입니다. 매주 토요일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네이버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미술 소식과 지금 열리는 전시에 대한 심층 분석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 구독 중인 7만여명의 독자와 함께 아름다운 작품과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앞서 다뤘던 칼럼들은 두 권의 책 <명화의 탄생, 그때 그 사람>과 <명화의 발견, 그때 그 사람>으로 곁에 두고 즐길 수 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