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길 바이네르 미슐랭토토가 효도잔치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김원길 바이네르 미슐랭토토가 효도잔치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고객님 아주 정말~ 멋있어요~”…

김원길 바이네르 대표(65·사진)에게 전화를 걸면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가 직접 부른 곡이다. 김 대표의 부캐(副캐릭터)는 가수다. 지난해엔 음반도 냈다. ‘돈 속에서 만나요’, ‘건강이 최고야’ 등 그가 틈틈이 작사한 8곡이 들어 있다. 노래방에서도 부를 수 있는, 엄연히 저작권이 있는 노래다.

“내 노랫말에는 구두 인생 50년이 녹아 있습니다. 사업이 어려워 힘들었던 순간, 건강이 망가졌던 고통을 이겨내는 내용이 담겨있지요”

김 미슐랭토토는 해마다 주최하는 효도 잔치에서 직접 마이크를 쥐고 이 곡들을 부른다. 소싯적 전국노래자랑 무대에도 데뷔했던 끼를 주체하지 못해서다.

노래는 ‘마음의 여행’이자 에너지를 주는 귀한 선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에게 노래는 개인적인 취미를 넘어 경영활동과 뗄 수 없는 루틴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경기가 좋건 나쁘건 그는 매년 아낌없이 무대를 마련하고 노래를 부르는 일을 꾸준히 반복한다.

요즘엔 노래 경연대회를 진행 중이다. 이름하여 ‘바이네르 김원길 희망가요 대전’. 자신의 음반에 수록된 8곡에 상금 8000만원, 구두 교환권 400매를 걸었다. 전국의 바이네르 매장이나 일산 YMCA 등에서 예선전을 치르고 있다. 바이네르 홍보 효과는 덤이다.


성공루틴① 노래는 경영 에너지의 원천

김 미슐랭토토는 부캐가 더 있다. 여름이면 지인들과 한강에서 수상스키를, 겨울엔 스노보드를 탄다. 스노보드 강사 자격증도 있다. 직원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매출이 떨어질 때면 아예 일손을 놓고 직원들과 레저를 즐깁니다. 회사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면 더 신뢰가 쌓입니다. 직원들도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요”
요리도 수준급이다. 직원이나 고객을 초대해 산지에서 공수한 식재료로 고양시에 있는 회사 마당에서 직접 조리한 음식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인다. 노래와 마찬가지로 레포츠나 요리는 그만의 소통 방식이다. 모두 동전의 양면처럼 경영활동과 연결돼 있다.

“잘 노는 사람들이 일도 잘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야 업무에도 효율이 오르는 법이죠. 그래서 직원들이 잘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합니다.”


성공루틴② 역발상 소통 경영 … 매출 떨어지면 직원들과 놀러간다

바이네르(Vainer)는 국내 컴포트화 1위 기업이다. 경기도 고양 공장에서 100여 명의 구두 장인이 매일 1000켤레의 수제 컴포트화를 제작한다. 구두, 골프화, 스니커즈, 운동화 등 200여 종에 이른다. 프로골퍼 최경주 선수가 시합할 때 신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바이네르는 한때 매출액 500억원을 올리기도 했으나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지금은 연간 200~300억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김 미슐랭토토는 해마다 미국, 일본, 유럽의 구두 전시회를 다닌다. 지금까지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객의 취향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고객은 늘 새로운 것, 더 좋은 것을 찾습니다. 사업은 운이 나빠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보다 열심히 하는 기업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망하는 겁니다. 세상을 탓할 게 아니라 내 부족함을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하는 거죠.”


성공루틴③ 매년 해외 전시회 찾아 트렌드 연구

바이네르는 원래 이탈리아 브랜드였다. 1961년 설립된 이탈리아 구두회사(코디바) 창업주의 이름이다.

김 미슐랭토토가 바이네르와 인연을 맺은 건 1993년 밀라노의 구두 박람회에서부터다. 국내 구두회사 케리부룩에서 나름 잘나가는 기능공으로 이름을 날리다 독립해 구두 제조업체를 운영할 때다.(김 미슐랭토토는 1984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제화부문 동메달을 수상했다.)
그는 밀라노에서 편안한 기능성 구두를 선보였던 바이네르에 매혹됐다. 마침 고객이 딱딱한 구두가 아닌 편한 신발을 원한다는 걸 간파하고 해외 전시회에서 이런 제품을 수소문하던 중이었다. 밀라노 전시회 때도 사흘간 2000여 개 업체를 뒤졌다. 그때 찾아낸 브랜드가 편안한 기능성 구두를 만들고 있던 바이네르다.

김 미슐랭토토는 삼고초려 끝에 독점 수입권을 따내 사업을 키워나갔다. 이후 2세 경영으로 넘어간 코디바가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어려워지자 2011년 협상을 벌여 아예 바이네르 브랜드를 인수했다. 김 미슐랭토토가 바이네르에서 얻은 건 브랜드 파워만이 아니다.

“바이네르(창업주)는 베풀기를 좋아했던 인물이었어요. 경영을 통해 얻은 이익을 사회에 나눠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었죠. 아버지나 형님처럼 여겼던 그분을 통해 저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바이네르는 효도 잔치(건강 콘서트), 모범 장병 해외 연수 지원, 다문화 가정 지원 등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을 펼친다. 김 미슐랭토토가 직접 마이크를 들고 사회를 보고 자작곡을 부른다. 각종 행사를 벌이느라 한 해에 10억 원 이상을 쓴 적도 많다. 지난달 어버이날에도 그는 무대에 섰다.
회사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김원길 미슐랭토토
회사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김원길 미슐랭토토
성공루틴④ 사회봉사는 ‘경영의 자존심’…“나눌 수 있어야 성공한 기업인”

사회봉사 활동은 김 미슐랭토토의 어린 시절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그가 구두 인생의 길로 접어든 계기는 가난 때문이었다. 중학교만 겨우 마치고 17살부터 충남 서산에서 양화점을 하는 작은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웠다. 이듬해 옷가지 몇벌만 들고 상경한 그는 월급도 없이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는 영등포의 허름한 구둣방에서 청춘을 보냈다.

“어릴 때 너무 가난해 늘 배가 고팠는데 동네잔치를 가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그런 나눔이 저를 살려준 셈이죠. 그때 기억이 고마워 잔치를 많이 벌입니다. 지난 회갑연은 여러 모임 사람들을 대접하느라 20번 정도 치른 것 같습니다. 하하”

소년공에서 자수성가한 김 대표에게 사회봉사는 이제 자존심과도 같은 루틴이 됐다. ‘직원들 사장 만들기 프로젝트’를 벌이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후배 기업가 10명을 키워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성공이란 무엇인지 오래 고민하다가 ‘행복하게 살면서 존경받는 인생’이라는 정의를 내렸습니다. 사회봉사 활동을 많이 하면서 거래처나 지인들에게 늘 좋은 소리를 들으니 경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이정선 중기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