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서울 중구 한은 별관에서 열린 '2025 BOK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혁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서울 중구 한은 별관에서 열린 '2025 BOK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혁 기자
한국은행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통화당국의 관리·감독 권한을 잇달아 강조하고 나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집권시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당국이 미리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일 서울 중구 한은 별관에서 열린 '2025 BOK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해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을 비(非)은행권에도 허용할지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비은행권 스테이블코인 허용은) 금융 안정까지 다방면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비은행권이 결제 사업에 뛰어드는 걸 허락하기 전에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자본 규제를 우회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약화할지 등을 고려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비은행권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대해 사실상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셈이다.

이 총재가 이런 의견을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총재는 나흘 전인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화폐의 대체재"라며 "비은행기관이 발행하면 통화정책 유효성을 상당히 저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화폐 대체재가 부도 나거나 사고가 나면 지급 결제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한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은은 기관 차원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우려를 내놓은 바 있다. 앞서 한은은 지난 4월 '2024년 지급결제 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은 일반 가상자산과 달리 지급수단적 특성을 내재하고 있다"며 "이용이 확대될 경우 법정통화 수요를 대체해 통화주권을 침해하고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외부 충격으로 인한 코인런 발생시 관련 리스크가 전통 금융시장으로 전이돼 금융 안정과 지급 결제 시스템의 안정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시가총액 추이. 사진=RWA.xyz 캡처
글로벌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시가총액 추이. 사진=RWA.xyz 캡처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시총 1년만 47% 뛰어

한은이 최근 들어 이같은 입장을 연일 강조하고 나선 배경에는 하루 앞으로 다가온 조기 대선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한 이재명 후보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원화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제도화 필요성을 수차례 강조했다. 민주당은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등 가상자산 정책 추진을 위해 선거대책위원회 산하에 디지털자산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업계에서 민주당 집권시 원화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도입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는 이유다. 세계 최대 베팅 사이트 폴리마켓에서 이 후보의 대통령 당선 확률은 이날 기준 96%를 기록했다.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시장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급팽창 중이라는 점도 한은의 위기감을 키우는 대목이다. 블록체인 분석 플랫폼 RWAxyz에 따르면 글로벌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시가총액은 이날 기준 2353억 3000만달러로 1년 전(1600억 5000만달러)보다 약 47% 뛰었다. 한은이 이날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거래된 토토사이트 잘못환전 규모도 지난해 3분기 약 17조원에서 4분기 약 60조 3000억원으로, 불과 1분기만에 3배 넘게 급증했다.

문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민주당의 시각이 한은과 다르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민간 개방 없이 스테이블코인 산업을 육성하는 건 어렵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산하 디지털자산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입장문을 내고 이 총재 발언을 정면 반박했다. 민주당 디지털자산위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중앙은행 중심의 인허가·감독권 방식의 접근은 글로벌 규제와 기술 동향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며 "후발주자인 한국이 국내 플랫폼 기업과 핀테크 기업 등 민간 참여 없이 은행 독점 모델만 고수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크리스토퍼 월러 미 연방준비제도(Fed) 이사가 2일 서울 중구 한은 별관에서 열린 '2025 BOK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혁 기자
크리스토퍼 월러 미 연방준비제도(Fed) 이사가 2일 서울 중구 한은 별관에서 열린 '2025 BOK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혁 기자

美 연준 "비은행권에 공정한 기회 제공해야"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입장도 비슷하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이날 '2025 BOK 국제콘퍼런스'에서 진행된 이 총재와의 대담에서 스테이블코인을 '비은행 기관이 제공할 수 있는 하나의 결제 도구'로 정의했다. 월러 이사는 "스테이블코인은 결제 도구로서 결제 수수료를 낮추는 환경을 제공한다"며 "은행은 스테이블코인에 비우호적이지만 비결제업체에도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기 정부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본격화하면 한은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험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은은 올 4월부터 '프로젝트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CBDC 기반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테더(USDT), 유에스디코인(USDC) 등 해외 사례를 보면 스테이블코인 도입 과정에서 민간 참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차기 정부가 민간 중심의 스테이블코인 정책을 추진할 경우 한은 CBDC 프로젝트의 추진 명분은 물론 존재감도 크게 약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차기 정부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비은행권 진입을 허용할지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글로벌 웹3 벤처캐피탈(VC) 해시드의 싱크탱크 해시드오픈리서치(HOR)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현재 한국이 참고할 가능성이 높은 유럽연합(EU)의 미카(MiCA) 규제나 일본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은 발행 주체를 은행 또는 은행에 준하는 기관으로 한정한다"며 "이 경우 디파이(DeFi)나 글로벌 결제 시스템과의 호환성이 크게 떨어지고 보유자 생태계 중심의 토크노믹스 설계도 사실상 봉쇄된다"고 분석했다.

<블록체인·가상자산(코인) 투자 정보 플랫폼(앱) '블루밍비트'에서 더 많은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준형 블루밍비트 기자 gilson@bloomingbit.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