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임실 냉동채소업체 그린피아에서 쿠팡 PB상품 '곰곰'을 생산하는 모습. 사진=그린피아 제공
전북 임실 냉동채소업체 그린피아에서 쿠팡 PB상품 '곰곰'을 생산하는 모습. 사진=그린피아 제공
행정안전부가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한 전북 임실군 오수면. 인구가 3000명에 불과한 이 작은 시골마을엔 국내 최대 규모의 냉동채소 공장이 있다. 축구장 두 개 크기(약 5000평)의 부지에 들어선 이 공장에선 매일 최대 15만톤의 냉동채소 물량을 쏟아낸다.

냉동채소업체 ‘그린피아’로 이 회사는 작년에 매출 60억원을 올렸다. 올해는 30% 더 늘어난 80억원을 벌어들일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지금은 임실군 내 작은 마을의 경제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지만, 이 업체는 8년 전만해도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파산 위기를 겪었다. 인구가 적어 주변에 납품할 마트나 도매시장도 없는 시골 마을에서 식재료 공장이 성장하기는 쉽지 않았던 탓이다. 파산 위기를 겪던 작은 지방 공장이 국내 최대 업체로 성장한 비결은 바로 이커머스다.

6년 만에 3배 성장…매일 15만t씩 생산

그린피아는 국내 최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 쿠팡에 PB(자체브랜드) 상품을 납품하면서 회생에 성공했다. 이 회사는 쿠팡 PB 상품인 ‘곰곰’ 냉동채소를 단일 제조하는 협력사다. 그린피아가 만드는 곰곰 냉동대파와 냉동 다진마늘은 쿠팡 냉동채소 카테고리의에서 상위 5위권 안에 드는 베스트셀러다. 지난 20일 서면을 통해 김학영 그린피아 대표(60)와 인터뷰했다. 그는 “자칫 없어질 뻔한 회사가 미국시장까지 진출했다"고 말했다.
김학영 그린피아 대표. 사진=그린피아 제공
김학영 그린피아 대표. 사진=그린피아 제공
곰곰은 주로 채소를 소량 구매하는 소비자층을 공략한다. 상품 라인업은 볶음밥용 믹스 채소 등을 포함해 총 22가지다. 그린피아만의 급속 냉동기술(영하 35~40℃)은 얼린 채소의 색상이나 식감·영양소를 그대로 보존하는 데 탁월하다는 게 쿠팡 측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잦은 외식과 늘어난 1·2인가구 등이 많아지면서 대파 한 단, 마늘 한 망을 다 못 먹는 가구들이 500g짜리 곰곰 냉동 대파를 구매하거나 270g 곰곰 냉동 다진마늘 등을 많이 구매한다"고 설명했다.

PB상품으로 마케팅 비용이 빠지면서 시중보다 낮은 가격대를 책정할 수 있었던 점이 곰곰 채소의 성공비결이다. 이커머스 소비에 익숙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제품으로 입소문을 탔다. 곰곰 냉동 대파 한 제품만 해도 상품평 5만개가 넘어갈 정도다. 그린피아의 연 레프레 토토사이트은 쿠팡에 처음 상품을 납품하던 2018년엔 20억원 수준이었나 현재는 3배 이상 늘었다. 전체 레프레 토토사이트의 80%는 쿠팡에서 나온다.

김 대표는 "사업이 성장궤도를 타면서 10여년 전엔 꿈도 꾸지 못했던 해외 수출의 기회도 열렸다”며 "쿠팡에서 입소문을 탄 것이 그린피아 제품을 잘 모르던 해외 바이어들 사이에서 품질을 가늠하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그린피아는 2년 전부터 미국, 싱가포르 등으로 냉동 양파·청양고추·대파나 된장찌개·카레·짜장용 냉동 채소믹스 등 14종을 수출하고 있다. 올해 5월엔 수출 10만달러를 달성했다.

레프레 토토사이트 빚더미에서 수출기업으로 성장

대기업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김 대표는 2003년 40대 초반 비교적 젊은 나이에 냉동 채소 무역사업을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에 들른 중국 칭다오에서 한국으로의 농산물 수출시장이 유망하다는 정보를 접하면서다. 중국 항저우와 칭다오 등지에서 연간 1만5000여톤(t)의 냉동 채소를 국내 대형업체에 납품하면서 한때는 연 레프레 토토사이트만 250억원을 냈다. 냉동채소 사업에서 시장성을 엿본 김 대표는 2011년엔 국내산 냉동채소 생산하기 위해 그린피아를 설립했다.
쿠팡 PB상품 그린피아 '곰곰'. 사진=그린피아 제공
쿠팡 PB상품 그린피아 '곰곰'. 사진=그린피아 제공
그러나 사업체가 커지자 운영이 녹록치 않았다. 제때 거래처 대금이 들어오지 않는 등의 문제로 자금 융통이 어려워지면서 수십억원대 빚더미에 앉게 됐다. 매출은 20억원대로 급감했다. 그는 “당장 문을 닫을 위기가 닥치면서 개인 사재를 터는 등 부채를 청산하는 고통이 가중됐다”면서 “구사일생으로 쿠팡에 입점 기회를 얻었는데 그게 생명줄이 될 줄 몰랐다”고 했다.

법정관리를 겪는 회사였지만 쿠팡은 그린피아의 기술력을 인정해줬다. 김 대표는 “곰곰 제품이 시장에 나오자마자 예상치 못할 정도 양의 주문이 들어왔다”며 "이커머스의 시장성을 봤다"고 회상했다.

리뷰를 보면서 보완이나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즉각 감지할 수 있다는 점이 이커머스 납품의 장점이다. 그린피아는 쿠팡 리뷰를 주 3회 모니터링하며 제품을 개선한다. 예컨데 기존 볶음밥용 냉동 채소 상품은 감자, 당근 등 6가지 원료를 10mm 크기로 잘라 생산했는데 감자와 당근이 잘 익지 않아 딱딱하다는 불만이 나왔다. 아이들이 먹기에 크기가 다소 커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점을 반영해 제품을 리뉴얼하면서 감자와 당근만 8mm로 크기를 줄여 내놨다. 김 대표는 "세세한 부분에서 제품 개선하는 노력을 보이면 소비자들이 알아준다"며 "재구매가 늘면서 매출 상승으로 연결됐다"고 전했다.

지역 고용 늘고 인근 농가도 활성화

그린피아의 성장은 지방소멸 위기 지역에 고용과 유통 활력을 불어넣었다. 임실군은 1970년대만 해도 인구가 10만명이 넘었지만 최근엔 2만5000여명 수준으로 4분의 1 토막이 났다. 대표적인 산업인 낙농업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산업 고령화로 대도시로의 인구 유출을 막을 수 없었다. 김 대표는 “인구가 적고 주변에 오프라인 납품처도 없지만 쿠팡이 전국 곳곳에 물류센터를 갖췄고 로켓배송을 하기 때문에 수요가 유지된다”며 “좋은 품질의 제품 생산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귀띔했다.
사진=그린피아 제공
사진=그린피아 제공
그린피아는 호남권의 광주 첨단풀필먼트센터를 비롯한 곳곳 물류센터에 상품을 입고한다. 배송과 고객 응대, 마케팅 등은 쿠팡에서 지원해주는 점이 작은 업체가 지방에서 사업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기존에 일반 공장에 상품을 납품하던 당시에는 낮은 마진율 뿐만 아니라 거래량도 안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었으며 다양한 영업활동까지 해야 했다”며 “이커머스 PB는 이미 확보한 소비자와 물류망을 기반으로 마케팅도 도맡아줘 양질의 상품 생산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게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회사가 성장하자 30~40대 젊은 인력도 유입되고 있다. 임실 주변 농가도 덩달아 수혜를 입는 중이다. 그린피아와 정기 거래하는 농가는 15곳 이상으로, 진도·해남·신안에서 대관령·서산까지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중국산 채소의 공세 속에서도 국내 농가에 안정적 소득원을 제공하고 있다. 김 대표는 "'내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안전한 식품'이라는 철학 아래 고품질 국내산 냉동채소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며 “임실 치즈처럼, 임실 냉동채소도 전국적으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혜원 토토사이트 추천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