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그룹 시총 '100조원 시대'

재계 5번째…장중 102兆 터치

1년 5개월 만에 180% 급증
조선 호황…3년치 일감 꽉차
전력기기·선박AS 등도 호조
HD브랜드토토그룹이 시가총액 ‘100조(兆) 클럽’에 가입했다. 삼성, SK, 브랜드토토자동차, LG그룹에 이어 다섯 번째다. 조선업 슈퍼사이클과 인공지능(AI) 붐에 따른 전력기기 수요 폭발이 맞물려 그룹 시총이 1년5개월 만에 180% 늘어난 결과다. 여기에 미국 해군 함정 수주와 해외 조선소 건조 등이 더해지면 ‘몸값’이 더 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8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HD브랜드토토그룹 산하 10개 상장사의 시총은 이날 장중 한때 102조원을 기록했다. HD브랜드토토그룹 시총이 1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작년 12월 31일(77조6695억원)과 비교하면 25.0% 증가했다. 시총 100조원 이상인 그룹은 삼성(535조원), SK(226조원), 브랜드토토차(137조원), LG(127조원) 등 네 곳뿐이다. 부동의 5위였던 포스코그룹(41조원)은 철강과 배터리 시장 부진으로 한화(94조억원)에도 밀렸다. 다만 HD브랜드토토그룹주는 오후부터 하락하기 시작해 종가 기준으론 시총이 97조447억원으로 떨어졌다.

HD브랜드토토그룹주의 ‘쾌속 항해’를 이끈 것은 조선업 호황이다. 조선 3사(HD브랜드토토중공업·미포·삼호)의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의 올해 영업이익은 3조5702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2년 전 2823억원보다 12.6배 많다. 고부가가치 선박을 중심으로 3년 치 일감이 꽉 찬 데다 배값도 2008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덕분이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력기기와 선박 수리, 중장비 등으로 다변화한 전략도 먹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HD브랜드토토일렉트릭은 변압기 수요 폭발에 힘입어 올해 9170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됐다.

조선만 있는게 아니다…HD브랜드토토, 전력기기·중장비 싣고 '쾌속항해'
시총 9위서 3년 만에 5위로…HD브랜드토토그룹 질주 비결은

53년 HD브랜드토토그룹 역사에서 최악의 한 해를 꼽으면 단연 2014년이다. 수년간 2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내던 브랜드토토중공업이 선가 하락과 해양 플랜트 부문 손실이 겹쳐 사상 최악의 실적(3조2740억원 적자)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이투자증권(현 iM증권) 등 일부 계열사를 매물로 내놓는 자구책에도 이듬해 조(兆) 단위 손실을 이어가는 등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그때 HD브랜드토토가 선택한 돌파구는 크게 두 가지였다.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 친환경 선박 기술 투자를 늘리는 동시에 조선업 중심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기로 한 것. 조선업에 밀려 ‘뒷방 노인네’ 신세였던 HD브랜드토토일렉트릭과 HD브랜드토토마린솔루션 등을 분사해 인력과 투자를 늘렸고, 중장비업체 두산인프라코어(현 HD브랜드토토인프라코어)를 새 식구로 맞이했다. 이렇게 태어난 비(非)조선 계열사들은 올해 1조7000억원(증권사 추정치)이 넘는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되는 우량 기업이 됐다.

◇1년 만에 50조원 불어나

HD브랜드토토그룹의 쾌속 항해에 가속이 붙고 있다. 지난해 5월 28일 시가총액이 50조원을 넘어선 지 딱 1년 만인 28일 장중 한때 100조원을 넘겼다. 그룹 내 상장사 주가가 급상승하면서 시총 기준 재계 순위는 3년 전 9위에서 5위로 올랐다.

10개 계열사 중 시총 1위는 ‘맏형’인 HD브랜드토토중공업(35조2873억원)이다. 이날 주가는 3.52% 하락했지만 올 들어 38.3%(11만원) 올랐다. 조선 3사(HD브랜드토토중공업·미포·삼호)의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20조4888억원)이 뒤를 잇는다.

HD브랜드토토그룹이 잘나가는 것은 불황기 때 준비한 친환경 선박 수요가 확 늘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해운사들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지키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메탄올, 수소 등을 연료로 쓰는 친환경 선박을 잇달아 발주하고 있다. 여기에 20~25년 주기의 선박 교체 시기가 맞물렸다. HD브랜드토토중공업은 중국보다 7년 빠르게 LNG 선박 양산에 성공하는 등 친환경 선박에선 여전히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수익성은 대폭 좋아졌다. 17만4000㎥짜리 LNG 운반선 건조 가격은 이달 2억5500만달러(약 3570억원)로, 2020년 12월 1억8600만달러보다 37.1% 올랐다. 이 덕분에 HD한국조선해양의 올해 영업이익 추정액은 3조5702억원으로 뛰었다. 증권가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낸 2010년(5조8774억원) 기록을 2027년께 뛰어넘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비(非)조선서도 1조7000억원 이익

조선 이외 계열사들도 순항하고 있다. 전력기기(HD브랜드토토일렉트릭)와 선박 부품 및 엔진(HD브랜드토토마린솔루션·마린엔진), 건설기계(HD브랜드토토인프라코어·건설기계) 등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덕분이다. 이들 7개 기업의 영업이익은 올해 1조7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증권사들은 예상한다. 글로벌 산업 트렌드 변화를 제대로 포착해 그룹 포트폴리오를 적기에 재편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브랜드토토중공업에서 분사한 HD브랜드토토일렉트릭이 대표적이다. 변압기를 제조하는 이 회사 시총은 13조6799억원으로, 2년 전보다 687.6% 늘었다. 인공지능(AI) 붐 덕분에 전력기기를 찾는 기업이 늘어난 데다 미국을 중심으로 20~30년 전 설치한 제품의 교체 수요가 더해진 결과다. 2017년 분사 후 공장 증설과 기술 개발에 전념한 덕분에 기회를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내년엔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정기선 HD브랜드토토그룹 수석부회장(사진)이 2017년 브랜드토토중공업에서 분사를 주도한 HD브랜드토토마린솔루션도 포트폴리오 다변화 전략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선박유지보수업, 벙커링(급유) 사업에서 친환경 선박 개조 사업 등으로 사업 분야를 넓히고 있다. 2017년 2403억원이던 매출은 올해 2조978억원(증권사 컨센서스 기준)으로 10배가량 불어날 전망이다. 영업이익도 3624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증권가 예상치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