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를 도입한 사업장이 지난해 15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 연장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정부가 직무·성과급제 확산에 공을 들이고 있지만, 노조의 저항에 막혀 되레 호봉제 사업장이 늘어난 것이다.

10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2024년 임금체계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호봉제 임금체계를 둔 사업장의 비율은 12.8%였다. 2023년 12.7%보다 0.1%포인트 늘어난 수치로, 2010년 이후 15년 만에 역주행했다. 같은 기간 호봉제 적용 사업장은 21만8263개에서 22만8647개로 1만 개 넘게 늘었다. 반면 맡은 직무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급제’를 도입한 사업장은 2023년 8.9%에서 지난해 8.3%로 0.6%포인트 감소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노조가 직무급제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 기업들이 관성적으로 호봉제를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금체계를 처음 도입하는 창업·중소기업은 굳이 노조와의 갈등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했다. 호봉제로 임금 부담이 늘어난 기업이 청년층의 임금이라도 낮게 유지하기 위해 다시 호봉제를 채택하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중소기업이 인건비 경쟁을 피하기 위해 똑같은 호봉 테이블을 유지하는 ‘호봉제 담합’ 사례까지 나왔다.

정부와 경영계는 토토사이트 운영 썰를 유지한 채 정년을 연장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청년 채용이 줄고 생산성은 더욱 낮아질 것으로 우려한다.

이수영 한국고용복지학회 수석부회장은 “연공 서열에 따른 임금체계는 청년 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직무급과 성과급 등 개인의 직무 가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임금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