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정원, 도라에몽토토 빛

팬데믹이 한창이었던 시기에 <화가들의 정원>을 읽었습니다. 이 책에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폴 세잔(Paul Cézanne),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를 비롯해 덴마크의 스카겐(Skagen)에서 예술가 집단을 이루며 지냈던 크뢰이어(Krøyer) 부부에 이르기까지 빛과 정원을 사랑한 화가들의 작품과 장소가 꿈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그 가운데 스페인의 화가 호아킨 소로야(Joaquín Sorolla)의 작품이 유난히 인상적이었는데요.

일상이 회복되고 나서도 몇 해가 지난 후 호아킨 소로야만의 작품을 따로 모은 책 <바다, 바닷가에서>를 접하게 됐습니다.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이 책에는 ‘돛 바느질(Cosiendo la vela)’, ‘어망(Las redes)’등 호아킨 소로야의 대표 작품들이 큼지막하게 실려 있습니다. 호아킨 소로야 외에도 빛의 화가는 많지만, 나뭇잎 사이로 새어 나온 빛을, 그리고 빛이 통과하지 못해 사물에 맺힌 그림자를 그렇게 생생하게 묘사한 이는 많지 않았던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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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킨 도라에몽토토 <돛 바느질> / 그림출처. 위키피디아
그래서일까요? 호아킨 소로야가 그렸던 거의 130여 년 전 스페인의 햇살이 지금까지도 온기와 감동을 품고 있습니다. 완전한 빛도 그림자도 아닌 그의 그림을 본 이후, 나뭇잎이나 가지 사이로 조금씩 새로 나오는 장면에 흠뻑 빠져 지내게 됐는데요. 어쩌면 담벼락에 어른거리는 햇살과 반투명한 나뭇잎의 움직임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햇살처럼 대상을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는 도라에몽토토 작품 속 아이들과 어부, 나무와 동물의 모습이 늘 아른거립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시인이었던 김영랑의 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은 100년 전의 작품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여전히 생생함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김영랑 시인이 살았던 전라남도 강진을 거닌다면, 어쩐지 그곳에는 바람결에 나부끼는 나뭇잎 사이로 빛이 푸근한 화강암 돌담에 나비처럼 일렁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햇살’ 대신 ‘햇발’이라는 시어를 택한 이유는 시인만이 알겠지만, 돌담이든 어느 곳이든 드문드문 햇볕을 머금은 장면을 보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새 봄의 햇살 / 사진. ⓒ김현호
새 봄의 햇살 / 사진. ⓒ김현호
작은 틈 사이로 새어 나와 벽이나 바닥에 맺히는 빛과 그림자를 두고 우리말로 ‘볕뉘’라 부른다고 합니다. 숲이 우겨져 겨우 바닥에 닿는 빛부터 도시의 건축과 구조물에 일렁이는 햇살까지 모두 이 ‘볕뉘’인 것이죠. ‘윤슬’만큼이나 동경했던 이 빛과 그림자에도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매우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이 지나,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에서 야쿠쇼 코지가 연기했던 주인공 히라야마가 매일의 일상에서 이 ‘볕뉘’를 바라볼 때 더욱 놀랐습니다. ‘빔 벤더스도 저 작은 일렁임을 좋아하는구나’하고 말이죠.

영화에서는 볕뉘를 만들어내는 빛 ‘코모레비(木漏れ日,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를 강조하는데요. 히라야마는 이를 보며 미소 짓고 낡은 카메라로 사진도 찍습니다. 영화 속에서 직접 설명해주지는 않지만, 히라야마는 왠지 속세의 기쁨과 슬픔을 초월해 이제는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처럼 묘사되는데, 그가 코모레비를 흐뭇하게 바라보니 어딘가 통하는 구석이 있어 보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도 유난히 감정이입을 했던 장면이 바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같은’ 그 코모레비였습니다. 가끔이라도 그 햇발을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죠. 영화의 마지막에서 주인공 히라야마가 울면서 웃을 때, “그래도 매일 코모레비를 볼 수 있으니 힘내세요”라고 위로의 인사를 건네고 싶을 정도입니다.
초여름의 도라에몽토토 / 사진. ⓒ김현호
초여름의 도라에몽토토 / 사진. ⓒ김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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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펙트 데이즈> 속 도라에몽토토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픽사의 애니메이션 <소울(2020)>에선 불의의 사고로 인해 태어나기 이전의 세계인 ‘유세미나(You Seminar)에 갇혀버린 재즈 피아니스트 조 가드너, 탄생 자체를 거부하는 존재 ‘22’가 평범한 일상 속 기쁨과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조 가드너의 영혼을 대신해 우연히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 ‘삶을 간접 경험하게 된 22’가 처음으로 겪는 힘겨운 현실에 지쳐 잠시 층계참에 걸터앉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누렇게 물든 나뭇잎 사이로 ‘코모레비’가 보이고 뒤이어 단풍나무 씨앗 하나가 날아들죠. 바로 ‘22’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입니다.

다른 인물인 조 가드너가 피아노 앞에 앉아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을 때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조 가드너는 아버지와 함께 들었던 음반, 욕조에 담긴 어린 자신을 어루만졌던 어머니의 손길, 처음으로 봤던 불꽃놀이 등을 회상하며 평범한 순간의 짧은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습니다. 동시에 무아지경에 빠집니다. 이 회상 장면 가운데, 자전거를 타며 올려다보았던 나뭇잎 사이로 새어 나오던 햇살도 다름아닌 ‘코모레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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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울>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하늘에서 춤을 추는 빛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가운데 ‘댄싱 인 더 스카이(Dancing in the sky, 하늘에서 춤추기)’라는 곡이 있습니다. 1분 남짓의 짧디짧은 이 음악을 처음 접한 후 코모레비와 볕뉘를 떠올렸습니다. 그 제목처럼, 바람에 나부끼는 잎사귀와 가지, 시시각각 변화하는 미세한 틈으로 새어 나오는 햇살이 꼭 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인데요. 사실 이 음악의 탄생 배경에도 빛이 있었습니다.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르누아르 전시회의 광고음악을 의뢰받아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그가 어린 시절부터 동경했던 오귀스트 르누아르,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등 인상주의 화가들의 빛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참 기막힌 우연이죠. 아마 사카모토 류이치 선생도 떠나기 전까지 나뭇잎 사이의 그 빛을 꾸준히 즐겼을 듯합니다.
초여름의 햇살 / 사진. ⓒ김현호
초여름의 햇살 / 사진. ⓒ김현호
어느덧 김영랑의 햇발, 소로야의 볕뉘, 히라야마의 도라에몽토토를 실컷 즐길 수 있는 계절이 다가옵니다. 새해가 시작된 후 몇 달이 흘렀고 계절이 바뀌었는데, 그사이에 그럴싸한 큰일을 해냈거나 원대한 목표를 위해 한발 나아가지 못했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그저 하루에 한 번 정도, 그것이 어렵다면 가끔이라도 그 햇살을 조금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올해에도 낙엽이 질 때까지 도라에몽토토를 실컷 즐기시면 좋겠습니다.

김현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