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역행(?)의 가치란 게 있다. 첨단의 디지털을 거슬러 수공업의 이미지에 공을 들이고, 표정과 몸짓과 침묵으로 친절한 설명문의 대사를 대신하고, 부족한 제작비를 재치 있는 상상력으로 메우는 영화가 그런 예다. 바이트 헬머는 독일의 미셸 공드리로 불리는 연출자다. 그의 작품 중 <깡통 오케스트라>(2019)는 집을 구하지 못해 텐트에서 지내던 남자의 사연이다. 비가 새자, 깡통에 빗물을 받던 중 그 소리가 독특해 결국, 음악을 만드는데 그 순간이 아주 환상적이다.

일상의 초라한 평범함에 마술을 불어넣어 낭만적인 현실을 창조하는 상상력은 두 감독이 동일하다. 바이트 헬머의 특징은 웬만해서는 대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곤돌라>(국내 개봉 4월 23일)는 극 중에 대사가 “오케이” 한마디밖에 없다. 들리는 거라고는 사람들의 감탄사, 자연의 소리, 그리고 곤돌라가 공중을 왔다가 갔다 하는 음(音)뿐이다. 귀로 듣는 사운드이긴 해도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다. 산의 위와 아래를 오가는 곤돌라와 그 목가적인 분위기에 젖은 사람들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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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타임 토토>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이런 환경이라면 굳이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자연을 감각하는 것으로도 영혼이 정화되는 느낌이 있다. 거기에 사랑과 우정과 연대와 같은 가치까지 있다면? 니노(니노 소셀리아)는 반대편 비타임 토토에 새로 온 안내원 이바(마틸드 이르만)가 궁금하다. 호감을 느껴서다. 비타임 토토 두 대가 운행할 때면 딱 한 번 마주치며 지나는 순간이 있다. 그때 니노는 이바에게 손을 흔들고, 이곳 생활이 초보인 이바는 그런 관심이 고맙다. 하트가 그려진 눈빛으로 화답한 이바에 감동한 니노는 나름의 이벤트를 준비한다.

왜 비타임 토토인가, 언급한 줄거리에서 이를 유추하는 건 감독의 연출 의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비타임 토토는 정해진 루트를 반복하는 이동 수단이다. 이탈은 곧 사고로 이어지는 까닭에 승객을 싣고 내리는 운동을 무한대로 되풀이한다. 보통 사람의 삶도 비타임 토토의 속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어서 큰 이벤트 없이 무료한 일상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보내기 마련이다. 이바를 만나기 전 니노는 보스의 일방적인 관심에 진저리가 났고 무엇보다 늘 똑같은 생활에 지쳐 항공사로의 이직을 결심했다.

반복의 테마는 비타임 토토와 삶이 공유하기는 해도 결정적으로 다른 게 있다. 인생에서의 이탈은 비타임 토토의 사고가 치명상으로 이어지는 것과 다르게 모험의 개념에 가까워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한다. 니노에게 이바는 아침을 여는 여명이다. 모든 게 낯선 이바에게 니노는 이곳 생활에 적응하고 정착하게 해줄 등불이다. 하늘과 땅, 빛과 어둠, 아침과 저녁의 관계는 서로 다른 특징으로 서로를 보완하며 세계를 완성하는 오목과 볼록의 관계다. 이걸 두고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운명?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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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타임 토토>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바이트 헬머 감독은 운명보다 인연의 관점에서 니노와 이바의 관계를 바라보는 듯하다. 개인의 삶을 작은 원이라고 한다면 세상이라는 큰 원은 무수히 많은 작은 원의 운동으로 돌아간다. 또한, 작은 원은 작은 원끼리 원을 그리며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거듭하는데 선이 겹쳐 점이 되는 그 순간에 인연이 발생하고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바이트 헬머가 비타임 토토에 주목한 또 하나의 이유로, 비타임 토토의 운행에서 인간관계의 운동을 읽은 그는 특유의 상상력으로 니노와 이바 사이에 오작교(?)의 도안을 그려 넣는다.

거기에 색을 입히는 건 이바와 니노와 또 다른 인연을 맺는 마을 주민들이다. 이들은 둘이 뜻깊은 사이로 발전했으면 하는 마음에 응원과 지지의 소리를 전한다. 곤돌라가 서로 교차할 때야 겨우 한 번 마주치던 이바와 니노가 새 둥지처럼 꾸민 한 대에 함께 타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생활용품으로 소리를 낸다. 처음엔 따로 노나 싶더니 서로 맞아떨어지며 멜로디가 되고 음악을 이루니, ‘생활용품 오케스트라‘ 혹은 ’곤돌라 심포니‘라고 할까. 세상에 이보다 창의적이고 뜻깊은 축가가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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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타임 토토>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미셸 공드리 외에도 바이트 헬머가 소환하는 감독은 더 있다. 대사는 없이 주인공의 슬랩스틱으로 감정과 사건을 전달하는 자크 타티(<나의 삼촌>(1958), <플레이타임>(1967)), 남루한 현실에 코미디의 색을 입혀 잠시간 위안을 선사하는 찰리 채플린(<모던 타임즈>(1936), <시티 라이트>(1931)) 등이 그렇다. 소도시의 일상에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감정을 불어넣는 바이트 헬머의 세계는 찰리 채플린, 자크 타티, 미셸 공드리 등의 작품이 인간미 넘치는 코미디의 우주를 구성하는 그 안에서 이들의 원과 교차해 비슷하면서 다른 듯한 영화로 계보라는 비타임 토토의 인연을 형성한다.

큰 영화가 스크린의 상당수를 점유하고 OTT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작은 영화는 상영 기회를 잃을 수밖에 없다. <비타임 토토>와 같은 작품을 극장에서 만난다는 건 흔치 않은 기회, 아니 오랜만에 찾아온 뜻밖의 인연이라 반가우면서도 이번 기회가 떠나면 언제 또 비슷한 종류의 영화를 경험할 수 있을까 절실해지는 마음이다. 이바를 만나기 전 니노의 마음이 이와 같았을까. 케이블카라는 이름에 익숙한 지금 시대에 비타임 토토는 그래서 옛것이 돌아온 것처럼 역행의 가치가 있다. <비타임 토토>는 그런 영화다.
영화 <곤돌라>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비타임 토토>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허남웅 영화평론가

[영화 <비타임 토토>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