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가운데)이 충전 인프라 관련해 정민교 채비 각자대표(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채비 제공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가운데)이 충전 인프라 관련해 정민교 채비 각자대표(오른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채비 제공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신차 가운데 전기차 비중은 9%. 여태 팔린 자동차를 누적으로 계산하면 3%에 그친다. ‘전기차 천국’으로 불리는 노르웨이의 작년 판매비중(89%)뿐 아니라, 유럽 평균 침투율(25%)과 비교해도 턱없이 모자라다. 2023년 하반기부터 전기차, 배터리 업계를 강타한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는 한국에서만 장기화하고 있다. 미국, 유럽 등에선 정부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 쉬운 충전 인프라를 등에 업고 전기차 판매량이 바닥을 찍은 뒤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여전히 전년 대비 판매량이 떨어지고 있는 한국과 반대다.

한국만 ‘전기차 절벽’이 깊은 배경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충전 불편’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비중이 높은 미국, 평지가 많은 유럽에 비해 한국은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한국은 전체 가구 중 아파트 등 공동주택 거주 비율이 86%에 달한다. 가뜩이나 주차난을 겪는 상황에서 아파트 주차장에 전기차를 위한 충전 설비를 깔겠다고 하면 주민 반발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채비스테이 강남서초센터에서 열린 ‘전기차 급속 충전 인프라 확산을 위한 정책 간담회’엔 이같은 문제점들이 다수 지적됐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임대윤 전 대구동구청장을 비롯해 정민교 채비 각자대표, 최영훈 채비 각자대표, 이전우 부강 대표, 이혜련 이모션플레이스 대표, 유대원 워터 대표, 이훈 에바 대표 등이 전기차 보급률 확대를 위해 머리를 맞댄 이유다. 간담회에선 ‘2030년 전기차 보급률 50%를 달성하겠다’는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약을 실현하려면 충전 인프라 확대가 선행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충전 인프라 업계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다. 급속 충전기를 설치하려면 기기 생산비, 공사비, 한국전력에 내는 시설표준부담금까지 포함해 대략 한 기당 1억원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환경부가 지원해주는 금액은 총 비용의 30%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과거보다 축소된 금액이다. 충전 인프라 업계는 2022년 6월 일몰된 ‘인프라 운영 보조금’을 신설해달라고 요청했다. 충전기당 전기 사용량에 따라 사업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다. 정 대표는 “수소 충전소엔 유사한 제도로 지원해주고 있다”며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는 기간까지 정책 지원이 없으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고 말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26일 서울 서초동 채비스테이 강남서초센터에서 충전기 업체 대표들과 토토사이트 마루한 급속 충전 인프라 확산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이훈 에바 대표, 최영훈 채비 각자대표, 이혜련 이모션플레이스 대표, 김부겸 위원장, 정민교 채비 각자 대표, 임대윤 전 대구동구청장, 유대원 워터 대표, 이전우 부강 대표. 채비 제공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26일 서울 서초동 채비스테이 강남서초센터에서 충전기 업체 대표들과 토토사이트 마루한 급속 충전 인프라 확산을 위한 정책간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이훈 에바 대표, 최영훈 채비 각자대표, 이혜련 이모션플레이스 대표, 김부겸 위원장, 정민교 채비 각자 대표, 임대윤 전 대구동구청장, 유대원 워터 대표, 이전우 부강 대표. 채비 제공
또 전기차 충전 사업자들은 전기료 판매 금액을 자율적으로 설정할 수 있게 해달라고도 요청했다. 현재 충전 사업자는 한국전력에서 일률적인 가격에 전력을 구매한 뒤 고객에게 판매한다. 문제는 고객 판매용 전기료가 환경부의 ‘로밍 네트워크’에 엮여 있어 가격을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로밍 네트워크를 선택하지 않으면 환경부 지원금을 받을 수 없기에, 사실상 가격이 묶인 상태로 사업을 해야하는 셈이다.

이밖에 충전 인프라 업계는 △전기차 구매 보조금 상향 △전기차의 버스 전용차로 주행 허용(한시적) △도심 주차비 전면 면제 △재생에너지 직구매 △고속도로 휴게소 수전 제도 개선 △전기차 충전시설 탄소등급제 도입 등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특히, 고속도로 휴게소엔 부지별로 전기 용량이 한정돼있어 충전 설비를 설치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유 대표는 “한국도로공사 입찰에 선정돼 설치하려고 휴게소에 가 보면, 계통망 부족으로 운영 자체가 어려운 곳이 많다”며 “이를 확충하기 위해 3~4년은 기다리라고 하는데, 그러면 전기차 보급이 더 늦어진다”고 우려했다.

전기차 수요 감소, 정부의 충전 인프라 지원 축소로 충전 인프라 업계는 대부분 적자를 보고 있다. SK그룹은 전기차 충전기 운영사 SK일렉링크의 경영권을 사모펀드(PEF) 운용사 앵커에쿼티파트너스에 내줬다. LG, 한화 등 대기업들도 계속되는 적자와 사업 리스크에 충전 사업을 철수하고 있다. 충전 인프라 미비는 전기차 수요 둔화로 이어지고, 전기차가 안 팔리면 충전 인프라가 더 부족해지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 대표는 “수익을 낼 수 없는 규제를 혁신해야 민간 사업자의 의지가 고취된다”며 “국내 유니콘 기업의 해외 이탈이 이어지고 있는데, 정부가 미래 성장 동력을 지켜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충전 인프라 업계와 이같은 사안을 심도있게 논의했다. 그는 “탄소중립,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실현을 위해 전기차 보급 확대는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며 “이를 위해 새 정부가 들어서면 충전 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탄소중립을 위해 전기 모빌리티 시대를 여는 건 매우 중요한 국가적 목표”라며 “재생에너지 전환과 맞물려 부처별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