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부과 중인 25% 관세를 50%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US스틸 공장에서 한 연설에서 이같이 밝히며 “이는 미국 철강산업을 더욱 탄탄하게(secure)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5%(기존 관세율)는 허점이 있었는데, 이 조치(50%)를 피할 방법은 없다”며 “누구도 이 (철강)산업을 훔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철강만 언급했으나 이후 SNS에 올린 글에 철강과 알루미늄을 모두 적시해 4일부터 즉각 관세를 높여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1일 경기도 평택항에 토토사이트 마루한 제품이 쌓여있다.  연합뉴스
1일 경기도 평택항에 토토사이트 마루한 제품이 쌓여있다. 연합뉴스

◇상호관세 대신 품목관세 집중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철강 관세 인상은 지난주 연방국제통상법원(CIT)이 상호관세 및 펜타닐 관세의 근거인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사용에 제동을 건 일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일단 연방순회항소법원이 관세 효력을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지만 IEEPA가 처음부터 법적 근거가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던 만큼 ‘관세 드라이브’를 이어갈 다른 협상카드가 필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품목별 관세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를 둔다. 트럼프 1기부터 적용된 만큼 법적 리스크는 훨씬 적다. 상대국 상품 전체에 부과할 수 있었던 상호관세에 비하면 품이 많이 들지만 각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산업을 타깃으로 삼은 후 협상을 통해 일부 관세율을 낮춰주거나 해제하겠다고 유인하면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한국은 이 같은 전략에 취약하다. 품목별 관세 부과 대상인 자동차와 반도체는 대미 수출의 35%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다. 상호관세(25%) 근거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관세나 반도체 관세를 더 높이면 협상에서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조치로 기업에는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키는 대로 품목관세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기본 25%’라는 통념이 깨진 것이다.

◇韓 “경쟁력 상실” 울상

당장 한국 철강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미국은 한국 철강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지난해 한국이 집계한 대미 철강 수출액은 43억4600만달러(약 6조원)에 달했다. 대일 수출액(38억1200만달러·약 5조3000억원)보다 14%가량 많다.

관세는 이미 대미 수출에 타격을 주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철강·알루미늄에 25% 일괄관세가 도입된 후 한국산 철강재의 미국 수출 가격은 열연강판 기준 t당 20만원 이상 상승했다. 이 때문에 현지에서 생산·유통되는 미국산 열연강판보다 한국산 가격이 t당 약 5만원 더 비싸졌다.

그만큼 수요가 줄었다. 한국토토사이트 마루한협회에 따르면 3월 미국으로 수출된 토토사이트 마루한재는 23만9000t으로, 전년 동기(27만8000t) 대비 약 14% 줄었다. 4~5월 감소폭은 더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제철의 루이지애나 제철소 투자 계획이 있지만 공장 완공까지는 3~4년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배짱’을 부리는 것은 미국의 철강 생산으로 수요의 상당 부분을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미국은 세계 최대 철강 수입국으로 작년 2859만t을 수입(시장 점유율 23%·미국철강협회 자료)했다. 하지만 가격이 비쌀 뿐 미국 내 생산 가능 물량도 적지 않다. 미국의 철강 생산량은 연 7950만t으로 평균 수요(연 9500만t)의 약 83.6%였지만 가동률이 70%대 초반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 100% 가동을 가정하고 신규 투자가 이어지면 내수로 대부분 채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철강 관세가 50%까지 오르면 한국산 철강 제품은 가격 경쟁력을 사실상 완전히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김진원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