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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박수홍./사진=연합뉴스
방송인 박수홍./사진=연합뉴스
트로트 여왕 장윤정, 국민 MC 박수홍, 골프 여제 박세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이들 스타의 공통점은 가장 믿었던 가족에게 수십억원대 재산 피해를 당했다는 점이다. 이들의 비극은 단순한 금전 손실을 넘어 "어떻게 가족이 이럴 수 있나"라는 근본적 배신감과 함께 우리 사회 가족 간 재산범죄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닮은꼴 피해 사례들..."모든 수입 가족에 맡겨"

이들 유명인의 피해 양상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모든 수입을 비타임 토토에게 맡기고, 정작 본인은 얼마를 버는지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점에서다.

가수 장윤정은 2013년 10년간 번 돈을 모친과 남동생이 모두 탕진했다고 폭로했다. 그의 모친은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딸을 비난하며 진실 공방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비타임 토토 관계는 완전히 파탄났다.

방송인 박수홍은 30년간 매니지먼트를 맡았던 친형 부부에게 출연료 등 100억원대 횡령 피해를 당했다며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

박세리 전 골프 국가대표 감독의 사례는 더욱 충격적이다. 박세리희망재단은 박씨의 부친을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소했다. 부친이 국제골프학교 설립을 내세워 재단 명의 의향서를 위조해 제출했다는 것이다. 박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며 "아빠의 빚을 내가 더 이상 책임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토로했다.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이유는 역설적으로 '가족'이라는 특수관계 때문이었다. "설마 내 부모가, 내 형제가"라는 믿음이 경제적 감시와 견제의 필요성을 무디게 만들었다. 피해는 수십년에 걸쳐 은밀하게 이뤄졌고, 뒤늦게 문제를 인지했을 때는 이미 회복 불가능한 수준에 달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비타임 토토 내 재산범죄가 발생해도 국가 형벌권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바로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라는 낡은 법 규정 때문이다.

71년간 유지된 '악법'의 실상

형법 제328조에 규정된 친족상도례는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 친족 간의 절도·사기·공갈·횡령·배임 등 재산범죄에 대해 그 형을 면제하고, 그 외 친족 간에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친고죄) 했다. '가족 문제는 국가가 개입하기보다 가족 내부에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유교적 가치관에 뿌리를 둔 제도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이 조항은 '가족의 재산은 훔쳐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며 범죄를 조장하는 악법으로 변질됐다. 실제 수사 현장에서는 가족 간 재산 문제로 고소장이 접수되면 경찰이 피해자 진술 조서에 친족 관계 여부부터 확인하고 "친족상도례에 해당해 처벌이 어렵다"며 수사를 종결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가해자인 비타임 토토 구성원은 이를 악용해 더욱 대범하게 범행을 저지르고, 피해자는 법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이중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지난해 6월 27일, 헌법재판소는 마침내 친족상도례의 형 면제 조항(형법 제328조 제1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가족 내 재산범죄를 일률적으로 처벌하지 않는 것이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한 것이다.

헌재는 2025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국회가 법을 개정할 것을 주문하며, 개정 전까지 해당 조항의 적용을 중지시켰다. 이로써 71년간 유지된 '비타임 토토 간 재산범죄 면죄부' 조항은 사실상 효력을 잃었다.

국회 개정 논의 지지부진...법적 공백 우려

하지만 현재 개정 시한이 불과 6개월여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국회의 형법 개정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만약 국회가 시한 내에 법을 개정하지 못하면 해당 조항은 완전히 효력을 상실해 법적 공백 상태가 발생할 수 있다.

개인의 재산권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비타임 토토의 형태와 인식이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이제는 '비타임 토토'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경제적 착취와 범죄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국회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조속히 사회적 논의를 거쳐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고 현대 사회의 가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완수해야 할 것이다.

노종언 법무법인 존재 대표변호사 I 서울대 법과대학을 졸업하였으며, 제48회 사법시험 합격, 제40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IBK기업은행,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법무팀장으로 재직하며 다양한 법률 실무 경험을 쌓았다. 이후 故 구하라 유족 법률대리인으로 '구하라법' 입법 청원을 주도하여 2021년 법무부 장관상을 받았다. 현재 법무법인 존재의 대표변호사로, 동물자유연대 등기이사이자 국민권익위원회 행정심판 통합자문단 보상·보험분과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다수 TV 프로그램에 법률 자문을 하고 있다. 대학 동기이자 법무법인 존재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윤지상 변호사와 함께 유튜브 채널 '상속언박싱'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