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피아니스트' 알리스 자라 오트 인터뷰
19년 만에 내한...다음 달 8일 서울 공연
지난 2월 존 토토사이트 위키 야상곡 전곡 앨범 발매
토토사이트 위키 야상곡과 베토벤 노래 교차해 공연
“시작은 매우 단순해요. 그러다가 고통이나 기쁨 같은 감정들이 점점 나타나요. 다양한 장식음이나 즉흥성도 붙여야 하죠. 연주를 끝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요. 이 모든 게 존 필드의 야상곡이 주는 매력이에요.”
피아니스트 알리스 자라 오트. / 사진출처. 마스트미디어. ⓒ Hannes Caspar
알리스 자라 오트는 12일 국내 언론과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오트는 토목 기술자였던 독일인 아버지와 피아니스트였던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1988년 태어난 독일 피아니스트다. 그의 인기는 대중적이다. 2008년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과 전속 계약을 맺고 17년간 선보인 앨범들로 누적 온라인 스트리밍 횟수 5억회를 넘겼을 정도다. 오트는 다음 달 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2006년 이후 19년 만의 내한이다.
“처음 들었던 필드는 애틋한 느낌”
오트는 ‘맨발의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신발이나 양말을 신지 않은 채 피아노 페달을 밟아서다. 이 모습을 두고 일각에선 ‘클래식 음악계의 전통에 대한 저항’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인터뷰로 만난 오트는 이러한 의견에 개의치 않는 듯했다. 딱히 전통을 저항하겠다는 뜻으로 한 건 아니었다고. 그는 “20대 초반에 오래된 피아노를 두고 연주하게 됐는데 하이힐을 신고 있는 데다 건반이 낮아 다리가 안 들어갔다”며 “여분 신발이 없어 맨발로 연주했지만 그 느낌이 매우 편해 계속 그렇게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트는 지난 2월 아일랜드 작곡가인 필드의 야상곡 모두를 담은 앨범을 냈다. 이후 유럽 17개 도시를 돌며 공연하기로 했다. 이번 내한은 그 연장선 상이다. 필드는 야상곡의 대가인 쇼팽보다 28년 빠른 1782년에 태어났음에도 현대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트도 “피아노를 배울 땐 필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그가 필드의 야상곡에 빠진 때는 코로나19 유행기였다. 오트는 “야상곡으로 재생목록을 꾸리려고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우연히 필드의 야상곡을 발견하게 됐다”며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도 왠지 모를 향수와 애틋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알리스 자라 오트. / 사진출처. 마스트미디어. ⓒ Nagy Attila
필드의 야상곡에 마음이 갔던 오트는 결국 그의 야상곡 전곡을 앨범으로 내기로 결심했다. 오트는 이 곡들로 순회공연을 하는 와중에도 야상곡이 새롭게 들렸다고 강조했다. 그는 “필드의 음악은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렵다”며 “어디에선 모차르트의 느린 악장이, 어디에선 하이든이나 베토벤의 초기 소나타가, 어디에선 쇼팽의 후기 음악이 연상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필드의 곡을 1년 정도 연주해왔는데 공연할 때마다 일부 구절을 다르게 연주하면서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있어요. 들으면 들을수록 필드의 작품에 담긴 놀라움을 알게 돼요.”
“필드 야상곡 9번, 월광 소나타와 닮아”
오트는 순회공연에 베토벤 레퍼토리도 추가했다. 1770년생인 베토벤은 필드와 같은 스승 밑에서 음악을 배웠던 동시대인이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도 필드의 야상곡 18곡 중 9곡을 베토벤 노래와 함께 선보이기로 했다. 오트는 “특히 필드의 야상곡 9번이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와 비슷하다”며 “연주 후 관객들이 필드와 베토벤의 작품에서 유사성과 차이를 나란히 발견한 듯한 표정을 지을 때면 제 자신도 행복하고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베토벤과 견주어 필드의 매력이 무엇인지 더 물어봤다. “베토벤 음악은 음악 세계 안에 들어가는 건축물을 짓는 것 같아요. 이 건물엔 빠져나올 출구가 없죠. 그저 곡을 온전히 경험해야 해요. 필드의 작품에선 창밖에 바다가 보이고 서로 이야기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여요. 바깥 세계를 관찰하면서 찰나의 순간 지나가는 감정이나 정서를 느끼게 되죠. 필드가 없었다면 쇼팽의 야상곡도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피아니스트 알리스 자라 오트. / 자료출처. 마스트미디어. ⓒ Ugo Ponte
오트는 업라이트 피아노를 즐겨 쓴다. 이 피아노는 현을 때리는 해머가 수직으로 세워져 있다. 헤머를 수평으로 눕히는 그랜드 피아노보다 크기가 작아 벽에 붙여 둘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음색이 상대적으로 단조롭다. 오트는 “다양한 방식으로 소리를 내보고 싶다”며 “업라이트 피아노는 옆에서 들려주는 것 같이 친근한 소리를 들려준다”고 설명했다. “필드의 야상곡 12번을 녹음했을 때 막바지에 벨 소리처럼 소리를 내야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전 할아버지 집에 있는 아주 낡은 시계추 소리를 내보고 싶어서 피아노 현 하나의 소리를 없애는(mute) 식으로 소리를 만들었어요. 음악 교육에선 이런 게 잘 허용되지 않지만 전 이처럼 다양한 시도를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음악에 한계 없어...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
오트는 파격적인 뮤직비디오를 선보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LED 스크린을 벽면과 천장에 두른 스튜디오나 눈보라가 몰아치는 얼어붙은 호수 위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식이다. 그는 “(스토디오 촬영은)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봤던 콘크리트 건물과 네온사인들을 보고 촬영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얼어붙은 호수를 배경으로 만든 뮤직비디오에선 사람들이 얼어붙어 있는 디스토피아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하면서 사람들이 음악을 새롭게 경험했으면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피아니스트 알리스 자라 오트. / 사진출처. 마스트미디어. ⓒ Pascal Albandopulos
오트는 음악 너머 세상에 포용성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내비쳤다. “사람들은 서로 경청하거나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냥 재빠르게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정립하곤 해요. 저에겐 모든 가능성에 열려 있는 자세가 영감과 흥미를 줘요. 중요한 건 진정성을 갖고 양질의 결과물을 내는 거죠. 한계를 두지 않는 모든 게 우리 경험을 풍부하게 해주고 시야도 넓혀줄 거예요.” 그의 말이 끝날 땐 반짝반짝 빛나는 눈에서 일종의 확신이 느껴졌다. 신경계통 질환인 다발성경화증을 2019년 진단 받았음에도 오트가 성공적인 공연을 거듭해왔던 이유를 가늠하게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