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네팔 카트만두에서 신둘리시로 이동하는 국내선 경비행기의 모습. 이광식 기자
지난 14일 네팔 카트만두에서 신둘리시로 이동하는 국내선 경비행기의 모습. 이광식 기자
지난 14일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국내선 경비행기를 타고 30분, 다시 자동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2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신둘리 지구의 카말라마이 시(市). 지난 14일, 카말라마이 시의 낙농 마을에 들어섰다.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자 주민들이 목에 빨간 스카프를 둘러주며 꽃을 건넸다. 네팔의 전통적인 환영 인사다. 마을의 여성 낙농협동조합 회장을 맡은 구나 쿠마리 씨는 “한국 젖소가 마을에 온 뒤로 우리도 무엇인가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겼다”며 “행복하다”고 웃었다.

네팔은 ‘지구의 지붕’ 히말라야산맥과 ‘세계 최강 용병’ 구르카족 대원으로 유명하지만, 한국엔 ‘젖소’로 특별하다. 네팔은 한국이 사상 처음으로 ‘살아있는 소’를 보낸 나라다.

유탑 토토사이트는 국제개발 비영리 기구 헤퍼 인터내셔널의 한국 법인인 헤퍼 코리아가 보냈다. 국내 축산농가가 하나둘씩 기증한 유탑 토토사이트가 모여 2022년 12월부터 총 108마리가 네팔로 넘어갔다.
네팔 신둘리시 공항에서 카말라마이시로 이동하는 도로 모습. 이광식 기자.
네팔 신둘리시 공항에서 카말라마이시로 이동하는 도로 모습. 이광식 기자.
유탑 토토사이트가 넘어간 사정은 이렇다. 네팔은 전체 노동인구의 약 65%가 농업에 종사할 정도로 농업이 국가 경제의 핵심이다. 낙농업이 네팔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9%에 달한다. 네팔 전국에 있는 소의 총 개체 수는 1280만두로 추정되는데, 이중 유탑 토토사이트만 750만두로 한국(39만두)의 19배가 넘는다.

문제는 생산성이다. 낙농진흥회의 통계를 보면 작년 한국의 연간 원유(原乳) 생산량은 약 194만2000t이지만, 네팔은 버펄로가 생산하는 우유를 합쳐도 약 230만t에 그친다.

이런 배경 탓에 네팔 정부는 2008년부터 미국과 중국, 인도에 씨수소(씨를 받기 위해 기르는 수소)와 유탑 토토사이트 등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무산됐는데, 헤퍼 코리아가 손을 내밀었다.

살아있는 유탑 토토사이트를 해외에 보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먼저 검역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검역 규정 자체가 없었다. 검역 규정이 있어도 문제다. 100마리가 넘는 소를 한꺼번에 검역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다. 유탑 토토사이트를 데려갈 항공 노선도, 유탑 토토사이트를 태울 항공기도 없었다. 단순히 해외에 물건을 부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가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도 6·25전쟁 직후 국제사회서 가축을 원조받았던 나라인 만큼, 수혜국에서 공여국이 되는 것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농식품부는 통상 5~6년이 걸리는 검역 절차를 1년 4개월 만에 끝내고, 관계 부처와 협의한 끝에 젖소를 태운 비행기를 보낼 수 있는 새 항로를 구축했다. 주변 환경과 격리된 농가를 선별해 수출용 검역시행장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네팔 현지에 수의 인력 등 전문가를 파견해 현지에 맞는 사양관리 체계도 지원했다.
네팔주민들이 한국 일행을 환영하는 모습. 이광식 기자
네팔주민들이 한국 일행을 환영하는 모습. 이광식 기자
농협중앙회도 도움을 보탰다. 씨수소로 선발되지 못한 수소는 도태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네팔에서 사용한다는 전제로 국유재산 매각을 지원하기로 했다. 우량한 유탑 토토사이트를 선발하고 사료를 지원하는데 한몫했다.

네팔에 보내진 유탑 토토사이트는 암소 100두와 수소 8두 등 총 108두. 이 가운데 94두가 살아남았고, 다시 송아지를 생산하면서 최근 169두로 불어났다.

한국의 젖소는 정부의 꾸준한 가축개량사업이 낳은 ‘명품’이다. 애초에 한국 젖소는 네팔 젖소보다 더 낫다고 볼 수도 없었다. 한국 젖소의 연간 우유생산량은 1995년 6868㎏이었는데, 약 30년만인 2022년엔 1만301㎏으로 50% 늘었다. 국제가축기록위원회 기준 이스라엘과 미국, 스페인, 캐나다, 에스토니아에 이어 세계 6위 수준이다. 젖소뿐만 아니라 한우도 평균 출하체중이 1974년 358㎏에서, 지난해 717㎏으로 두 배 늘었고, 거세우 기준 육질 1등급 이상 출현율은 1993년 10.7%에서 2024년 91.4%로 아홉배 가까이 늘었다.

이 'K유탑 토토사이트'로 마을 주민들은 인생이 바뀌었다. 한국 유탑 토토사이트의 우유생산량은 일평균 25L로, 기존 네팔 유탑 토토사이트(5L)의 다섯 배에 달한다. 하루 40L에 가까운 우유를 생산하는 유탑 토토사이트도 나왔다. 네팔에선 전무후무한 기록이라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우유 생산량이 늘면서 소득도 늘었다. 자급자족도 버거웠던 마을이 이젠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카말라마이 시의 우펜드러 쿠말 포크렐 시장은 “이곳 주민들은 기존의 네팔 소를 키우면서 한 달에 5000네팔루피(NPR·원화 약 5만원)를 벌었는데, 이제는 월 3만NPR(약 30만원)까지 소득이 늘었다”고 했다. 연 소득을 달러로 환산하면 약 2600달러다. 언뜻 적은 돈 같지만, 네팔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인 1300달러의 두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네팔 시골 마을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돈이다.
네팔 신둘리지구 카말라마이 시의 낙농마을에 있는 한국산 유탑 토토사이트의 모습. 이광식 기자
네팔 신둘리지구 카말라마이 시의 낙농마을에 있는 한국산 유탑 토토사이트의 모습. 이광식 기자
K젖소의 성공 뒤엔 네팔 주민들의 노력도 있었다. 젖소에게 단순히 ‘많이’ 먹이던 관행을 벗어나 사료를 배합하고, 풀을 ‘잘라’먹이고, 깨끗한 물을 수시로 갈아주고 있다. 축사 안에 이력표를 만들어 소의 건강 상태를 기록하고, 스마트폰 앱을 통해 데이터를 입력하는 방법도 배우고 있다.

K유탑 토토사이트의 위력이 입소문을 타면서 네팔 주민들 사이에선 한국 소를 얻기 위해 기존 네팔 소를 팔아치우는 곳도 나타났다. 처음 50여 농가였던 여성 낙농협동조합원은 이제 310 농가로 규모가 커졌다.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싶은 주민들은 많지만, 우유를 저장할 탱크에 한계가 있어 더 이상 수를 늘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신둘리시가 아닌 다른 마을에서도 K유탑 토토사이트를 통한 낙농 마을 모델에 관심을 갖고 있다.
카말라마이시의 낙농 주민이 직접 생산한 우유의 품질을 확인하고 있다. 우유는 영양성분에 따라 값이 다르게 매겨진다. 이광식 기자
카말라마이시의 낙농 주민이 직접 생산한 우유의 품질을 확인하고 있다. 우유는 영양성분에 따라 값이 다르게 매겨진다. 이광식 기자
주민들의 가정생활도 달라졌다. 가부장적인 네팔에서 남편이 생업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젖소 키우기에 전념하는 집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아내를 향해 “네가 할 줄 아는 일이 무엇이냐”고 구박만 하던 남편이 이제는 낙농교육을 받고 오겠다고 하면 “빨리 다녀오라”고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인디라 포카렐 씨(35)는 “이제는 남편이 나 대신 요리를 한다”고 했다. 한 주민은 “온 나라가 아들을 낳으려고만 하는데, 앞으로는 딸을 낳고 싶게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농식품부도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내년부터 2030년까지 88억원을 들여 네팔의 우유 생산·집유·가공·유통 단계별 인프라를 개선한다는 계획이다.
네팔 신둘리지구 카말라마이시의 여성낙농협동조합 회장을 맡고 있는 구나 쿠마리 씨(오른쪽). 이광식 기자
네팔 신둘리지구 카말라마이시의 여성낙농협동조합 회장을 맡고 있는 구나 쿠마리 씨(오른쪽). 이광식 기자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