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토토사이트 즐벳 서울관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전시 전경. 국립현대토토사이트 즐벳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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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나라의 국립미술관은 미술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어린이부터 외국인 관광객까지 꼭 한 번쯤 들르는 공간이다. 국립미술관이 품고 있는 소장품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립미술관의 품격은 소장품으로 승부하는 상설전으로 판가름 날 때가 많다. 동시대 유행이나 시대정신을 좇는 기획전, 특별전과 달리 상설전은 국가적 차원의 예술적 취향과 미술사적 인식을 보여주는 ‘한 나라의 얼굴’이란 점에서다. 수십 년간 축적해온 미술사의 맥락을 체계화한 ‘시민 교과서’인 셈이다.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이런 관점에서 늘 ‘반쪽짜리’라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었다. 2013년 개관한 이후 한 차례도 상설전을 선보인 적이 없어서다. 연간 국립현대미술관 전체 방문객의 67%(약 202만 명)를 차지하며 4개 전시관(서울·덕수궁·과천·청주) 중 사실상 본관 역할을 하는 서울관 위상을 고려하면 상설전 공백은 보다 뼈아프게 다가왔다. 국내 대중에게도, 지난해 22만 명이나 찾은 외국 관람객에게도 “한국 현대미술이 이렇게 커 왔다”고 설명하는 자리가 없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최욱경(1940–1985) '미처 못 끝낸 이야기', 1977, 한지에 색연필, 크레용, 147×266 cm. 국립현대토토사이트 즐벳 제공
최욱경(1940–1985) '미처 못 끝낸 이야기', 1977, 한지에 색연필, 크레용, 147×266 c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랬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폐막 날짜가 없는 전시가 열려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관 첫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가 개막한 것. “비로소 명실상부한 미술관으로 진화했다”는 말이 나올 만큼 젊은 청년층부터 중장년층까지 관람객 발길이 몰리고 있다.

한국현대미술 대표작 86점 한 자리에

총 6개의 주제로 이뤄진 상설전은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반세기에 이르는 한국 현대미술 대표작 86점을 선보이고 있다. 미술 애호가뿐 아니라 현대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입문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추상부터 실험, 형상, 혼성, 개념, 다큐멘터리까지 주제가 다양하고 회화, 오브제, 사진, 설치작품 등 작품 스펙트럼도 넓어 자칫 어지러울 수 있지만, 간결하고 밀도 있는 연출로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민정기 '영화를 보고 만족하는 K씨'. 국립현대토토사이트 즐벳 제공
민정기 '영화를 보고 만족하는 K씨'. 국립현대토토사이트 즐벳 제공
당대 화단을 주름잡았던 굵직한 이름들이 전시장 곳곳을 채웠다. 추상과 실험, 민중미술을 다루는 1~3부가 특히 그렇다. 이응노, 유영국, 서세옥, 이성자, 이우환, 이건용, 성능경, 이강소, 곽인식의 대표작을 볼 수 있다. 최욱경의 ‘미처 못 끝낸 이야기’(1977)가 시선을 사로잡고, 곽덕준의 ‘계랑기와 돌’(1970·2003) 등 최근 수년 새 국제 미술계에서 주목받은 한국 실험미술의 숨은 걸작들도 눈길을 끈다.

보다 눈여겨 봐야 할 지점은 전시 후반부인 4~6부다. 1990년대 이후 국제화 물결과 함께 세계 미술과 상호작용했던 작가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갤러리 개인전 등을 통해 단편적으로 접했던 한국 개념미술과 다큐멘터리 등 다매체 작업의 서사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강익중 '삼라만상', 1984-2014, 패널에 혼합재료, 오브제, 콜라주, 동에 크롬 도금, 가변 크기 설치 (반가사유상: 92×33×33cm, 패널: 50×50×10cm(400)). 연합뉴스
강익중 '삼라만상', 1984-2014, 패널에 혼합재료, 오브제, 콜라주, 동에 크롬 도금, 가변 크기 설치 (반가사유상: 92×33×33cm, 패널: 50×50×10cm(400)). 연합뉴스
4부 ‘혼성의 공간’에선 백남준을 비롯해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 김수자, 서도호, 이불, 강익중의 작품이 서로 마주 본다. 김수자의 기념비적 작품인 ‘보따리 트럭-이민자들’(2007)은 미술관 소장품 수집 이후 처음 대중과 만났다. 5부 ‘개념적 전환’에선 김범, 양혜규, 정서영의 개념적 작업을, 6부 ‘다큐멘터리·허구를 통한 현실 재인식’에선 박찬경 ‘늦게 온 보살’(2019) 같은 미술부터 음악, 영화, 퍼포먼스 등 예술 장르를 횡단하는 복합적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건희 컬렉션’이 큰 기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특별전 중심 운영을 벗어나 상설전시 체제로 방향을 틀 수 있게 된 데엔 2021년 기증받은 1400여 점의 이건희 컬렉션 덕이 크다. 미술사적 가치가 크지만, 국립현대미술관 연간 소장품 구입 예산으로는 확보할 수 없는 값비싼 작품들이 한꺼번에 수장고에 들어오며 상설전이 가능해진 것이다. 전시 도입부에 걸려 관람객을 압도하는 김환기의 뉴욕 시기 전면점화인 ‘산울림 19-II-73#307’(1973)이 대표적인 이건희 컬렉션 소장품이다.
김환기(1913–1974) '산울림 19-II-73#307', 1973, 캔버스에 유채, 264×213 cm ⓒ(재) 환기재단, 환기토토사이트 즐벳. 국립현대토토사이트 즐벳 제공
김환기(1913–1974) '산울림 19-II-73#307', 1973, 캔버스에 유채, 264×213 cm ⓒ(재) 환기재단, 환기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지난달 상설전 언론공개회에서 “상설전은 고정적으로 전시하면서 새롭게 교체될 수 있는 작품이 충분해야 가능하다”며 “그간 이런 부분이 미흡했는데, 이건희 컬렉션 기증이 (상설전 개최에)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경기 과천시 막계동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 중인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Ⅰ’과 짝을 이루는 전시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해방, 전쟁과 분단이라는 커다란 격동의 역사를 거치며 한국적 회화가 발아한 시기를 다루는 과천관 전시를 먼저 들렀다가 서울관을 찾는 게 좋다. 입장료는 서울관 상설전이 2000원, 과천관은 3000원이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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